#기행문
여주의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에 왔다. 영릉과 영릉에는 세종대왕을 모신 영릉(英陵)과 효종임금을 모신 영릉(寧陵)이 있다. 개인적으로 두 개의 릉(陵)이 발음이 같아 단순히 세종대왕릉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 지금 우리가 쓰는 한글을 창제하신 분이니만큼 예를 취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어 목례(目禮)를 하였다. 길을 걸어 오른쪽에 만나는 건물은 왕릉의 재실이다. 재실은 왕릉을 관리하는 관리자들이 지내며 업무를 보는 곳이자 제향을 준비하는 곳이다. 새로이 조성된 재실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재실을 지나 왼쪽에 연지(蓮池)라고 하는 연못이 있다. 왕릉이나 궁궐에 연못이 있는 이유는 화재(火災) 시 방화수로 쓰이는 목적이었다. 우리의 전통가옥은 목재로 만들어졌으니 불이 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었다.
연지를 지나 홍살문으로 들어섰다. 홍살문 가운데로 들어설 수 있는 사람은 임금이나 제사장이었다.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니지만, 조상에 대한 예로서 홍살문을 비켜 옆의 잔디로 걸어 들어갔다.
정자각을 구경하고 영릉(英陵)을 바라보았다. 영릉은 잘 단장되어 후손이 보기에도 마음이 뿌듯하다. 영릉은 세종대왕(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 왕릉은 두 개의 혼유석이 있고 봉분 둘레에 돌난간을 둘렀으며 12개의 석주에는 12간지를 문자로 새겨놓았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 해시계 등 과학기구를 발명하였으며 과학기술, 인문사회 등 많은 방면을 발전시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이었다.
영릉을 나와 왕의 숲길을 걸었다. 영릉(寧陵, 효종대왕)으로 건너가는 길이다. 길이 잘 정리되어 걷기에 좋았다.
영릉에서 사진도 찍고 난간에서 쉬며 능(陵)을 바라보았다. 영릉은 효종(재위 1649∼1659)과 왕비 인선 왕후 장씨가 모셔진 쌍릉이다. 능역(陵域)과 푸른 소나무들이 주변에 울창하여 그윽함을 풍기지만 세종 릉(陵)과 붙어 있어 찾는 사람이 적어 조용하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봉림대군에 봉해지고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로 8년간이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풀려 나와 소현세자가 변사하자 즉위하였다. 조선왕조가 당한 굴욕을 씻고자 청나라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길을 걸어 내려오니 영릉(寧陵) 재실이 있었다. 영릉(英陵)의 재실에 비하여 크지 않다. 건물을 들러보고 걸어 나왔다. 화창한 날이었다. 지금은 파란 싹이 돋고 나무에는 작은 잎이 달려 있지만 조금 지나면 신록이 우거지게 될 것이다.
● 세종대왕 (1397-1450)은 조선의 4대 왕이다. 세종대는 우리 민족사상 가장 빛나는 시기이다.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고, 유교 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와 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이 이루어졌다. 또한,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공법의 제정,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해 민족국가의 기틀이 공고해졌다. 훈민정음 창제는 가장 빛나는 업적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 1395-1446)는 조선 세종의 왕비이다. 아버지 심온과 숙부 심정이 태종에 의해 역모죄로 처형당하였고 소헌왕후의 어머니와 친족들은 관비가 되었다. 소헌왕후에 대해서도 폐비(廢妃) 논의가 있었으나 내조의 공이 크고, 왕자를 2명이나 출산하였으며 당시에 임신 중이었기에 폐비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어머니 안 씨와 가족들은 직첩이 복원되었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조선의 17대 왕 효종(孝宗. 재위 1649∼1659)은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서의 8년간 볼모 생활 중 설욕에 뜻을 두어, 즉위 후 은밀히 북벌계획을 수립, 군제의 개편, 군사훈련의 강화 등에 힘썼다. 그러나 북벌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청나라의 강요로 러시아 정벌에 출정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인선왕후(仁宣王后, 1618-1674)는 조선 제17대 왕 효종의 비이다. 병자호란 후 봉림대군과 함께 선양에서 8년간의 볼모 생활을 하고 돌아와 세자빈이 되었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하자 왕비에 진봉(進封)되었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