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기

시인 정지용 생가

광교가이 2024. 1. 8. 06:47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중략) (정지용/ 향수)

전 국민이 애송하는 시(詩) 향수(鄕愁)의 시인 정지용의 생가터에 왔다. 시인은 1902년에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1번지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생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현재의 죽향초등학교인 옥천공립보통학교에 다녔으며,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생가를 들러보니 지금이라도 시인이 문을 열고 나와 그의 시 향수를 읊조릴 것 같다.


시인의 생가는 1974년에 허물어지고 다른 집이 들어섰으나, 1996년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생가는 부엌이 딸린 안채와 행랑채 등 2동의 초가(草家)로 되어 있으며 이엉을 얹은 돌담으로 두 개의 사립문이 있다. 생가 옆에는 물레방아와 정지용 동상 등으로 꾸민 작은 공원이 있다.



이를 지나 옆의 정지용 문학관으로 왔다. 문학관에서 정지용이 살았던 시대적인 상황과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하여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천재적인 기질과 언어 감각으로 향수, 고향 등 주옥같은 명시를 발표하였다. 그의 시와 글은 정지용 시집 백록담 등의 단행본에 수록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연구논문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금은 지용제를 통하여 시인을 추모하고 있으며 정지용 문학상을 통하여 시인의 문학적 성과와 문학사적 위치를 기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설명하는 해설사의 눈빛이 남다르다. 1988년 지용제가 처음으로 거행된 이래 전국적인 문학축제로 성대히 치러지고 있어 그의 시 세계를 더욱 값지게 하며 세계적으로 확산이 되고 있다고 한다.

문학관에서 나오는데 문학관의 학예사가 키오스크에서 정지용 시인의 시를 출력하여 주었다.

처마 끝에 서린 연기 따라
포도순이 기여 나가는 밤, 소리없이,
가물음땅에 스며든 더운 김이
등에 서리나나, 훈훈히,
아아, 이 애 몸이 또 달어오르노나.... (중략) (정지용/ 발열)


●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시인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옥천 공립보통학교와 휘문고보를 거처 일본 동지사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동인과 카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납북되어 사망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정확한 행적은 알 수 없다. 그는 절제된 감정과 사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와 섬세한 언어 감각으로 빛은 시편들을 통해 한국 현대 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하였다. (생가터 앞 간판에서)

● 시인도 자식 걱정으로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고열(高熱)로 인해 신음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촉각적 심상과 시각적 심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동일 어구의 반복과 영탄형의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화자의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자식의 고통을 바라보는 부모의 애타는 심정을 표현하면서도 쉼표를 자주 사용하여 숨 가쁨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애타는 심정이 대자연의 신비,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루어 아이와 부모의 고통의 순간이 저절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기도 의식으로 승화되고 있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