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기

보신각

광교가이 2024. 6. 24. 06:39


광화문에서 걸어 보신각으로 왔다. 보신각은 종로에 있는 누각이다. 1990년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옛 보신각 동종을 걸었던 옛터이다.


보신각 근처는 항상 복잡하다. 행인들은 바삐 길을 걷고 있다. 나조차도 많이 와본 곳이기는 하지만 바삐 지나치게 되어 보신각 앞의 글들을 잘 읽어보지 못하였다. 이제야 설명을 자세히 읽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 한양에 종을 처음 건 것은 태조 7년(1398)이다. 태종 때 종루가 현재의 종로 네거리로 옮겨졌으며. 세조 때 다시 큰 종을 주조하여 달았다. 이 종은 임진왜란으로 파손되었고, 광해군 시절에 현재의 보신각 자리에 종각을 다시 짓고  원각사종(圓覺寺鐘)을 옮겨 걸었다고 하며 인정(寅正:오전 4시)에 33번, 오후 7시에 28번 타종하여 도성의 문을 여닫고 시각을 알렸다고 한다.


이 종각은 화재와 중수를 거치다가 고종 32년에(1895) 보신각이라는 사액(賜額)을 내려 이후 보신각종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종은 몸통에 균열이 생겨 타종할 수 없게 되어 경복궁 안에 새 종각을 짓고 보관 중이라고 하며, 지금 보신각에 걸려 있는 종은 대한민국 건국 후 국민의 성금으로 주조된 것이라고 한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보신각 앞에서 사진으로 담고 기록을 남겼다. 옆에는 작은 비석이 보였는데 보신각과 관련된 역사를 알리고 있다. 1919년에 3.1 독립 만세 시위의 중심지로 4.23 국민대회가 있었으며 한성정부(漢城政府)를 선포한 곳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날의 함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 1919년 4월 23일 이곳에서 국민대회(國民大會)를 열고 한성임시정부(漢城臨時政府) 수립을 발표하고 독립 만세 시위를 벌였다. 국민대회(國民大會), 공화만세(共和萬歲). 조선독립(朝鮮獨立) 등의 기를 들고 각종 전단을 살포하면서 동대문, 남대문, 종로를 행진하였고 보신각 앞에서는 임시정부수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하였다. (서울 육백년사 연표)

● 한성임시정부(漢城臨時政府)는 3.1운동 뒤 국내의 독립지사들이 주동이 되어 장차 국가의 독립에 대비하여 수립한 임시정부이다. 다른 곳에서 조직된 임시정부에 비하여 국민대회 등 정당한 절차를 거치고 탄탄한 조직을 가져, 훗날 상하이 임시정부와 통합되면서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