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기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촬영지

광교가이 2024. 8. 1. 08:20



한데 우물 바로 건너편에 주요섭 원작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영화 촬영지가 있다. 사유지라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근처의 다른 건물은 신식건물인데 영화의 영향인지 한옥 그대로 남아있다. 문을 바라보면 주인공 소녀 옥희의 낭랑한 음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우리 어머니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둘도 없이 곱게 생긴 우리 어머니는 금 년 나이 스물네 살인데 과부랍니다. 과부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몰라도, 하여튼 동리 사람들이 나더러 '과부 딸'이라고들 부르니까 우리 어머니가 과부인 줄 알지요. 남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나만은 아버지가 없지요. 아버지가 없다고 아마 '과부 딸'이라나 봐요.”

집에 들어가 영화의 여운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안에는 전혀 인기척이 없고 문이 잠겨있다. 소유주와 이야기가 잘되어 가옥이 개방되었으면 많은 사람이 방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길을 지나서 큰길로 나오니 팔달문이 보였다. 길을 건너 수원천으로 왔다. 시장이 시끌벅적하다. 가게에서 내놓은 작은 꽃들이 어여쁘다.


● 주요섭(朱耀燮, 1902-1972)은 1943년 일본의 대륙 침략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하여 추방 명령을 받고 중국에서 귀국하였고 광복 후에 ‘코리아 타임스’ 주필, 경희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소설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48)’, ‘미완성(1962)’ 등 다수가 있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 유교적 관념이 희박하였던 조선 전기까지도 과부의 재혼이 있었다. 그러나 성리학이 수용되고 조선왕조가 통치이념으로 이를 활용하면서 과부의 재혼을 규제하였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과부에 대한 정절의 강요는 목숨까지 저버리는 많은 열녀를 양산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 과부의 재가는 법적으로 허용되었으나 과부의 재혼을 터부시하는 관념은 계속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