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서울본부건물
명동에 어둠이 내렸다. 지나가는 차들은 서둘러 갈 길을 가고 있다. 나는 길을 걸으며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다. 길을 걸어 한국전력 서울본부건물로 왔다. 이 건물은 경성전기 주식회사의 사옥으로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준공되었다. 건물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며 문화유산 복원 및 재생사업을 통하여 깔끔한 모습이 되었다. 한국의 대표적 근대 건축물로서 역사, 문화적, 건축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미국은 1871년에 시카고 대화재를 겪었다. 이후 시카고는 재건되어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시가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건축의 발달이 이루어졌다. 이 건물은 합리주의와 기능주의를 중시하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한 건축가 집단인 시카고파의 건축양식에 르네상스 건축의 장식적 요소를 접목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한국 최초로 화재와 지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엘리베이터와 유리 블록도 설치되었다고 한다.
건물 앞에는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으로 고난받는 일본을 돕기 위한 구호활동을 하였던 미국인들의 사진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후에 일본과 미국은 2차 세계대전으로 서로 사활을 건 전쟁을 하였으니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 경성전기는 1898년 설립된 한성전기회사의 후신으로, 1961년에 현 한국전력공사로 통합되었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바람의 도시' 시카고가 불타기 시작하고 불길은 멈출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19세기 최악의 시카고 화재는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소방관들이 도착했을 때는 많은 수의 목조 주택과 농장이 불길에 휩싸였고 걷잡을 수 없었다. 수천 명이 불길을 피해 피난하였고, 시카고의 건물 3분의 1을 전소시키고 10만 명을 이재민으로 만들었으며 300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나서야 사그라들었다. 즉시 재건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19세기 후반 시카고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에서)
● 시카고파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시카고에서 활약한 미국 근대건축의 선구자적 건축가 그룹이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1923년 일본 간토 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이다. 12만 가구의 집이 무너지고 45만 가구가 불탔으며, 사망자와 행방불명이 총 40만 명에 달했다. 내각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태수습에 나섰으나 혼란이 심해지자, 국민의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한국인과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일본인들은 자경단(自警團)을 조직하여 조선인들을 체포, 구타, 학살하였다. 이러한 일본 군벌의 잔학행위는 역사상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한국근현대사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