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북변동
김포(金浦)는 살면서 인연이 닿지 않아 지나치던 곳이었다. 좋은 기회로 김포의 구시가지 북변동(北邊洞)에 왔다. 북변동은 백 년의 거리라 명명하여 주민들에 의하여 잘 관리되고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오래되고 낡은 모습조차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

차에서 내려 해동 1950 건물로 왔다. 해동 1950은 오래된 서점을 개조하여 만든 북변동의 카페로 빈티지 샵과 전시공간으로 잘 꾸며 놓았다.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오랜 시간의 흔적과 현재를 간직한 지역에서 사는 이야기들이 있는 작은 책방인 ‘로컬 책장’이라고 한다. 동네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로컬 크리에이터, 도시재생, 로컬창업, 아카이빙과 관련된 책들이 있다. 이곳에서 북변동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건물 바깥으로 나와 바라본 해동의 건물 창에는 코딱지 후비는 사람의 그림을 커다랗게 그려놓았다. 코딱지를 후빈다는 것은 남에게 보이기 싫은 장면인데 재미있게 표현하였다. 바로 앞에 우체통이 있다. 우체통에 1번이라고 쓰여있다. 김포가 시작된 1번지에 있는 우체통이라 한다. 이제는 김포가 발전되어 많은 아파트가 들어섰으나 북변동만큼은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북변동 거리를 사진에 담으며 걸었다.

길을 걷다 만난 송미 여인숙. 20여 개의 크고 작은 공간으로 이루어진 여인숙은 이제의 여인숙 기능은 하지 않는다. 작가들의 공방이자 편집공간으로 각종 전시가 열리는 창의적인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여인숙을 사진에 담고, 옆의 오달통 분식으로 왔다. 분식점 이름이 재미있다. 코흘리개 시절 학교 앞이면 흔히 볼 수 있었던 분식점. 이곳에서 먹은 김밥과 떡볶이는 어린 시절 바로 그 맛이었다.
다시 길을 걸어 눈에 띈 간판에는 삼표연탄이라 쓰여있다. 이제는 연탄을 사용하지 않아 사라져버린 연탄가게 간판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를 지나 고려 인종 때 창건되었다는 김포향교도 사진에 담았다. 작고 소박하지만 900년을 이어온 향교(鄕校)이다. 이제 향교는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 기능만 남았다.
향교를 돌아 좁은 골목길을 걸었다. 어렸을 적 이런 골목길은 무섭기만 한 곳이었다. 덩치 큰 아이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두런두런 살피며 걸어가곤 하였다. 이를 지나 김포초등학교를 사진에 담고 북변동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학교 앞의 계단을 내려와 만난 중앙인력공사라는 간판은 글자마다 서체가 달라 재미있다. 어린아이들이 가방과 신발 주머니를 들고 내달렸을 학교 앞의 골목길이다. 퇴락한 거리. 오래전 사람들이 북적였을 거리는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 옛 김포 군청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70년대에 우체국과 군청 등 관공서를 중심으로 다양한 식당과 다방 점포가 있었고 덕분에 김포의 명동이라 불릴 정도로 중심지였다. 도시가 확장된 덕분에 당시의 모습들을 거리의 박물관처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얼핏 보면 낡고 뒤처진 것 같지만 곳곳의 구석마다 저마다의 문화화 함께 생기가 되는 거리이다. (북변동 브로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