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궁지
고려궁지는 고려 고종 19년(1232) 몽고(蒙古)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도읍을 송도에서 강화로 옮기게 되는데 이때 옮겨진 궁궐터이다. 현재는 조선 시대 건물인 승평문, 강화유수부 동헌, 이방청(吏房廳), 종각 외규장각 등이 복원되어 있다.

정문인 승평문(昇平門)을 통하여 고려궁지로 들어갔다. 고려궁지에 들어서 오른쪽에 강화유수부 동헌이 있었다. 조선 후기 강화에 유수부를 설치하여 당상관인 유수를 파견하였는데 이때 강화유수가 일하던 중심건물이었다고 한다.


이를 지나 외규장각에 왔다, 외규장각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이다. 한성에 있는 규장각을 내규장각이라고 하였으며, 강화에 있는 규장각을 외규장각이라 하였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침입으로 잃어버린 서적들이 이제야 돌아왔다고 하니 그나마 안심이었다. 서적들이 궁금하여 공연히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궁지 왼쪽에는 강화동종(江華銅鐘)이 있었다, 강화동종(江華銅鐘)은 강화성의 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니 시계가 없던 시절 시계의 기능을 하였다. 1977년에 고려 궁지로 이전되었으나 이곳에는 복제품이 있고 진품은 강화역사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이를 지나 강화유수부 이방청(吏房廳)도 들러보았다, 이방청(吏房廳)은 이방, 호방 등 향리의 집무(執務) 공간이었다고 한다. 깨끗하게 단장되어 조용히 근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길을 돌아 나오며 고려궁지를 되돌아보았다. 파란 하늘이 나에게 인사하였다.
● 외규장각은 왕실 관련 도서를 보관할 목적으로 1782년 정조의 명에 의해 강화에 설치되었다, 왕립 도서관 역할을 하였으며 왕실과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儀軌) 등의 서적과 왕실 물품을 보관하였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외규장각과 여러 건물을 파괴하여 서적을 약탈하였다. 2003년에 복원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