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문헌서원
400년의 정취와 전통문화가 있는 문헌서원(文獻書院)에 왔다. 문헌서원은 고려말의 대학자 가정 이곡과 목은 이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으로 광해군 3년(1611)에 나라에서 문헌이라는 이름으로 사액(賜額)되었다. 이곳은 이곡과 이색뿐만 아니라 한산이씨 선현 8위를 제향하는 서원이라고 한다.
차에서 내려 먼저 마주치는 아름다운 한옥이 있어 자세히 보니 문헌전통호텔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하룻밤 묵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조금 지나 역사 교과서에서 보았던 고려말의 대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의 동상이 있었다. 동상에서 잠시 예를 취하고 홍살문으로 들어섰다, 지나는 오른쪽에 작은 호수가 있다. 봄날의 호수를 바라보니 마음이 잔잔해진다.
서원에 들어서서 건물들을 돌아보았다. 강학(講學) 공간이라고 하여 유생(儒生)들이 공부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건물 안에는 들어가지는 못하고 마당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조선 시대의 유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하며 미래를 꿈꾸었을 것이다.
나오는 길에 이색 선생의 시(詩)가 눈에 띄었다.
가랑비는 복사꽃 물결을 이루고
맑은 서리는 갈대잎 가을인데
가는 꽃은 그 어디에 내리려나
아득히 보이는 한 조각배로다.
진포귀범(鎭浦歸帆, 진포로 돌아가는 돛단배)/이색
지금은 춘삼월이지만 이색 선생이 호숫가 망루에 앉아 가을 풍경에 취한 모습이 선연히 느껴졌다.
● 이곡(李穀, 1298-1351)은 일찍이 원나라에 유학하여 문명을 떨쳤다. 원나라의 조정에 고려로부터 여인들을 징발하지 말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여 실력을 인정받았고 고려로 돌아와 관직 생활을 하였으며 유학의 이념으로 현실문제에 대처하였지만, 쇠망의 양상을 보인 고려에서 이상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동문선’에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가전체 문학으로 대나무를 의인화한 ‘죽부인전(竹夫人傳)’ 등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은 고려말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고려말을 대표하는 유학자로 이색의 학문적 성장에는 그 자신의 재능과 아버지 이곡이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다는 가문의 배경이 영향을 미쳤다.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정방을 폐지하고 3년 상을 제도화하였고, 성리학 발전에 공헌하였다. 우왕의 사부였으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후 창(昌)을 즉위시켜 이성계를 억제하려 하였다. 태조 이성계가 한산백에 책봉했으나 사양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