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21코스
제주 세화마을의 해녀박물관에서 올레길 21코스를 걷기 시작하였다. 세화마을에서 세화의 옛 이름은 가는 곶이며 곶은 수풀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이라고 하며, 마을 지형이 가는 곶으로 되어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연대 동산을 지났다,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통신수단이었던 연대가 있던 동산이라 연대 동산이라 불린다. 길을 건너 만나는 별방진(別防鎭)도 살펴보고 고이화 해녀의 생가도 볼 수 있었다.
신동코지 불턱을 지났다,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며 작업 중 휴식을 하는 장소이다. 이곳에서 물질에 대한 지식과 물질 요령, 어장의 위치 파악하고 물질 작업에 대한 정보와 기술을 전수하고 습득하는 곳이었다, 이곳은 불턱의 규모가 크고 장방형을 띄고 있다고 한다.
맬튼개를 지난다, 맬튼개는 하도리 굴동에 있는 갯담이다. 갯담은 밀물이 되어 들어왔던 고기떼들이 썰물이 되면 안에 갇히어 쉽게 잡을 수 있게 만들어놓은 장치를 일컫는 말이다. 멜은 멸치의 제주도 방언으로 멸치들이 많이 몰려들어 잘뜨는 개라서 멜튼개로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제주 사람의 지혜를 볼 수 있었다.


걸어가고 있는 영등의 바당은 마을 이름이다. 이를 지나 하도해수욕장을 지나갔다. 백사장이 넓고 물이 깨끗하다. 다시 길을 걷는다. 멀리 지미봉(只未峰)이 보여 힘을 내어 걸었다. 지미봉을 오르는 길에 지팡이도 준비되어 있어 이를 들고 올라갔다. 지미봉 정상에서 바다와 성산 일출봉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지미봉에서 내려오는 발길이 가벼웠다.



● 고이화(1926-2013) 해녀는 우도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물질을 배워 14세에 해녀가 되었다. 남달리 몸집이 크고 숨이 길어서 어린 나이에 ‘애기상군’으로 불렸다. 어린 나이에 출가 해녀로 일본과 전국 각지로 출가물질을 벌였고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으로 일본 순사에게 구타를 당해 생존 시까지 심한 상처가 남았다. 4.3사건으로 시댁 식구가 모두 경찰에 죽임을 당하고 남편마저 화병으로 죽는 비극을 겪었다. (길가의 설명에서)
● 별방진은 조선 중종 때 제주 목사 장림(張琳)이 이곳을 우도(牛島)와 함께 왜선(倭船)이 와서 정박하는 곳과 가깝다 하여 김녕방 호소를 철폐하고 하도리로 옮겨 구축한 진(鎭)이다. 진성은 지형적으로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은 타원형 성곽이다. (길가의 설명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