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가이 2023. 5. 26. 06:59

#기행문

지하철 동묘역에서 내려 동묘까지 걸었다. 걷는 곳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도 동묘 주위는 구제시장이 있어 각종 물건과 이를 사려는 사람들로 인하여 인산인해여서 빨리 걸을 수 없었다. 나도 좋은 물건이 있나 살펴보면서 천천히 동묘로 걸어갔다. 오래된 라디오나 카메라, 혹은 옷들은 저마다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동묘로 들어왔다. 혹시 문이 잠겨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문이 열려있어 다행이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살펴보거나 앉아서 쉬고 있다. 안의 건물을 관람하였다. 정전(正殿)은 평면이 앞뒤로 길쭉한 직사각형을 이루며, 내부는 본실(本室)과 전실(前室)의 두 부분으로 나뉘고 중간에는 문짝을 달아 사이를 막았다. 좌우 측면과 후면은 전벽(塼壁)을 쌓고 전면에는 살문을 달았다.


동묘는 관왕묘 가운데 서울 동대문 밖에 있는 사당. 임진왜란 때 관우(關羽)의 혼이 때때로 나타나 조선과 명나라의 군을 도왔다 하여 선조 32년(1599)에 명나라 신종 황제의 명에 따라 건립하여 2년 후에 준공하였다. 우리나라 보물로 정식 명칭은 ‘서울 동관왕묘’이다.


입구의 관리소에 브로셔를 문의하였는데 준비된 것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관람객을 조금 더 세심하게 관리하지 못하는 관리인이 안타까웠다.

학창시절 근처의 학교에 다닌 나는 동묘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거나 내리곤 하였는데, 그렇게 자주 다녔어도 동묘를 잘 알지 못하였다. 이제 동묘를 다시 되돌아보며 나왔다. 문 앞에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물건을 팔거나 사기 위하여 모여 있었다.


● 삼국지의 영웅인 관우는 관왕(關王) 혹은 관성제군(關聖帝君)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때 무신(武神)으로 모신 묘(廟)가 경북 성주(星州)와 안동(安東) 지방에 남아 있다. 1602년(선조35)에 명나라 신종(神宗)의 칙령(勅令)으로 만든 서울 동대문의 동묘(東廟)는 관제를 사주(祀主)로 모신 대표적인 묘이다. 관제를 받드는 관성교(關聖敎)에서는 지상지존(至上至尊), 삼계(三界)의 복마대성(伏魔大聖)으로 받들고, 병을 고쳐 주고 자손을 주는 수음자(授淫者)이며 소원을 달성케 하는 축복자(祝福者)로 여긴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