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
새벽부터 준비하여 먼 길을 나서 지리산 자락에 있는 구례의 화엄사에 왔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던 곳이었지만 거리가 멀어 오기가 쉽지 않았다.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에서 온 연기(鷰起) 존자(尊者)가 창건하였으며 절 이름은 화엄경(華嚴經)에서 따서 화엄사라 하였으며 자장 법사 등 여러 고승이 중창하여 조선 세종 때 선종(禪宗) 대본산(大本山)이 되었다. 정유재란 때 불에 탔으며 인조 8년(1630)에 중수하였다. 화엄사 경내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다고 한다.

일주문에 들어서니 좋은 말씀이 있어 걷던 길을 멈추고 보았다. 이렇게 살아야 하면서도 놓치게 되는 글귀이다. 그저 마음속에 새기게 된다.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한다
- 법구경

근처에 차일혁 경무관 추모비가 있었다. 차일혁은 6.25 전쟁 시 지리산 공비토벌을 위하여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이를 지켜낸 사람이다. 지금의 관점으로는 잘한 일이었지만 당대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차일혁이 있어 오늘의 문화재를 지켜냈다. 추모비는 문정희 시인이 글을 썼다고 한다.

추모비를 뒤로하고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보제루 앞마당에 들어섰다. 아래에는 스님들의 수행 공간이 있다고 한다. 위쪽 대웅전과 각황전은 예불 공간으로 당당하게 서 있다. 각황전도 국보이며 각황전 앞에 있는 석등도 문화재라고 하여 자세히 보았다. 각황전에는 신도들이 소원을 빌고 있다. 나도 손을 모아 소원을 빌어보았다.
화엄사에 있는 국보와 보물들은 중요 문화재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화엄사는 우리가 지켜야 하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 차일혁(車一赫, 1920-1958)은 독립운동가이며 경찰공무원이었다. 홍성공업전수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6년에 조선인 교사를 연행하던 일본인 고등계 형사를 폭행한 사건으로 중국으로 망명하여 팔로군과 함께 항일 유격전 활동을 벌였다. 해방 후 경찰에 투신하여 빨치산 소탕 작전을 하였으며 남부군 총사령관인 이현상을 사살하는 공을 세웠다. 전쟁 중 1951년 지리산 내의 사찰과 암자를 소각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으나 차일혁은 폭격이나 소각을 피하는 쪽을 택했고 명령 불이행으로 감봉 처분 등의 불이익을 받았다.
● 문정희(文貞姫, 1947-)는 전남 보성 출신의 시인이다. 1969년 시(詩) ‘불면(不眠)’으로 월간문학(月刊文學) 신인상(新人賞)을 받았다 서정(抒情)을 주제로 하여 불교 미학의 순수성을 우리말로 표현하여 애송적(愛誦的)인 시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주요작품에 ‘노래’, ‘만가(挽歌)’등이 있으며 ‘시법(詩法)’의 동인이다. (국어국문학자료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