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기

장성 필암서원

광교가이 2025. 6. 16. 06:11


전라남도 장성의 필암서원(筆巖書院)에 왔다. 필암서원은 1590년(선조 23)에 성리학자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진 곳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1868)이 내려졌을 때 호남지역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액서원(賜額書院)이다.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때 장성 필암서원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홍살문을 지나 서원의 문루를 지나갔다. 서원의 문루는 확연루(廓然樓)라고 하며 2층 기와집으로 되어있다. 문루의 편액은 우암 송시열(宋時烈) 선생의 글씨라고 한다. 1층의 문은 높지 않게 느껴졌다.


문루를 지나 단층 기와집 강당인 청절당(淸節堂)이 눈에 들어왔다. 정철당 마루에 앉아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이 건물에는 대청과 좌우 협실(夾室)이 있고, 대청에는 동춘(同春) 송준길(宋浚吉)의 편액이 있다. 눈에 보이는 숭의재(崇義齋)는 서원에서 공부하는 원생들이 생활하는 건물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그 시절의 학동(學童)들이 눈에 선하다.

조금 걸어 장판각(藏板閣)을 바라보았다. 장판각은 서적을 인쇄하기 위해 제작된 목판을 보관하는 건물이다. 자세히 안을 들여다보니 목판이 잘 보관되어 있다. 그 옆에 한장사(汗丈舍)가 있다. 한장사는 서원에 소속된 노복의 우두머리가 거주했던 건물로 장판각 옆에 있어 장판각을 지키는 역할도 겸하였다고 한다.

서원을 들러보다 서원을 관리하는 분이 책을 나르고 있었다. 해설사에게 물어보니 서원에 많은 책이 있어 책을 대출해주기도 한다고 한다. 먼 곳에서 온 입장이어서 무슨 책이 있는지 살펴보기만 하였다. 초여름의 햇살이 서원에 쏟아졌다.


● 김인후(金麟厚, 1510-1560)는 조선 시대 중종부터 명종 대의 장성 출신의 사림 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조선 후기에 호남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문묘에까지 배향되었으며, 조선 시대 호남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다. 시문학에 탁월한 소양을 보였으며 주리론(主理論)에 입각한 성리학적 소양을 겸비하였다. 사림 정치에 대한 새로운 기대 속에서 기묘 사림의 신원을 주장하며 명종 대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자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였다. (우리역사넷)

●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조선 시대의 문신이다. 성리학의 대가이자, 송자(宋子)라고 존칭 받은 대학자로 노론의 영수였다. 이언적, 이이, 이황, 김집, 박세채 와 함께 학자로서 최고 영예인  문묘에 배향되었고 사후에는 신하로서의 최고 영예인 종묘에도 종사 되었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은 조선 시대 후기의 문신으로, 유학자, 성리학자. 정치가로서 유교 주자학의 대가였다. 문묘에 배향된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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