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양주 회암사지 이른 아침부터 준비하여 양주 회암사지(檜巖寺址)에 왔다. 양주로 가는 길, 하늘이 맑다. 지나는 길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고향이 있어 부러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양주 회암사지는 고려 말, 조선 초 최대 왕실 사찰(寺刹)이자 대표적인 선종사원 유적이다. 창건 시기는 기록을 통해 12세기로 추정되며, 고려 말 인도의 승려로 회암사에 머물며 불법을 전파하기도 한 지공선사의 말씀에 따라 나옹선사가 14세기에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무학대사가 머물러 태조 이성계가 자주 행차하였으며,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에는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후 효령대군,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 중종의 비인 문정왕후 등이 회암사에 대규모의 불사를 단행하여 전국 제일의 도량이 되었다. 17세기까지 역대 왕과 왕비들의 위패를 봉안했던.. 더보기
강경 근대거리 오래전, 강경은 시대를 앞서가던 근대(近代)의 중심지였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각종 젓갈과 어패류가 거래되던 곳. 하지만 이제 거리는 한적(閑寂)하다. 그 시절의 영광은 이제 역사(歷史)가 되어 이방인을 맞이하고 있다.강경의 근대거리를 걸었다. 전체 공간을 소개하는 웰컴센터에서 길을 걸었다. 1900년대 의상과 당시의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는 양장점을 지났다. 길을 가다 만나는 딴스홀이라는 간판은이제는 그런 단어를 쓰지 않지만, 그래서 운치(韻致) 있다. 강경에서 열리는 무도 연회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간판만 있고 내부는 닫혀있는 듯하다. 그 시절 딴스(dnace)를 즐기던 근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길을 걸어 강경 씨네마와 1900년대 분위기로 이루어진 포토 스튜디오인 갱갱 사진관 간판.. 더보기
구 강경침례교회 최초 예배지 문학관(文學官)에서 나와 얼마 걷지 않아 오래된 한옥이 눈에 들어왔다. 기독교 한국침례회 최초 예배지(禮拜地)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한옥으로 들어가 사진에 담았다.이 한옥은 1986년 폴링 선교사가 서울에서 내려와 한국 침례교회의 첫 예배를 드렸던 포목 장수 지병석의 집으로 논산시 향토 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침례교회이면서 한강 이남에서 지어진 최초의 'ㄱ'자 교회로 당시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남녀유별(男女有別)이 엄격했던 유교 전통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예배지 앞 설명에서)예배지의 역사를 보면 안타깝다. 일제의 우리 민족의 말살정책과 항일사상 근거지를 없애기 위해 전국적으로 시행된 신사 참배 운동과 이곳에 신사를 짓는다는 명분으로 1943년에 교회를 폐교하여 방.. 더보기
강경산 소금문학관 옥녀봉에서 산기슭의 강경산 소금문학관으로 걸어 내려왔다. 소금문학관에는 작가 박범신의 삶과 이야기와 문학이 있다.자연과 문화의 연장으로 세워진 소금문학관은 내일을 살아갈 우리에게 강경의 정체성 인식과 자연을 누리는 휴양을 제공하고 누구든 문화의 소중한 가치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며 강경 문화 바람의 시작이 될 것이다. (소금문학관 브로셔에서)작가로서 나의 삶은 늘 현재 진행형이다, 날마다 고통스럽고 날마다 황홀하다. (소설 「소금」 작가의 말 중에서)- 사랑과 꿈과 기억과 눈물이 가득한 이곳을가만히 있으면 들려빈 산이 돌아눕는 소리버림받은 사람들의 쉰 기침 소리굽잇길마다 찬 서리 내리고봄은 아직 망루 너머 있는데사랑해요 먼 당신괘종시계는 무엇으로 길을 내고겨울 철새는 어떻게 길을 지우며 가는.. 더보기
해조문 옥녀봉을 내려오는 길에 해조문(解潮文)을 만났다. 해조문은 1996년에 논산시의 향토문화유산(鄕土文化遺産)으로 지정되었다.해조문은 조선시대 해양과학(海洋科學)의 기록(記錄)이다. 1860년에 제작된 암각문(岩刻文)으로 강경읍 금강 변 옛 강경포구 옆 옥녀봉 정상 근처의 바위 절벽에 음각으로 평면을 만들고 총 190자의 글자를 새겨 강경포구의 밀물과 썰물의 발생 원인과 시각, 높이를 기록한 조석표(潮汐表)이다. 해조문은 시각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수심의 높낮이를 계량화하여 기록함으로써 현대적 조석표의 구성요소를 구비한 획기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해조문 앞 설명에서)포구(浦口)에서 누구라도 쉽게 보고 고기잡이와 항해 소금 생산 등 해양 관련 부문에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조문을 새겨 놓은 곳은 강.. 더보기
옥녀봉 봉수대 다시 강경이다.강경 옥녀봉(玉女峰)에 왔다. 옥녀봉의 옛 이름이 강경산이다. 옥녀봉(44m)은 봉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높지 않다. 그래도 인근이 평야 지대라 전망(展望)이 좋다.금강이 감돌아 흐르는 강 언덕의 강경산은 풍치(風致)가 아름답고 수운정(垂雲亭)이라는 정자와 봉수대가 있었다. 봉수(烽燧)란 높은 산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여 나라에 일이 생기면 밤에는 횃불을 낮에는 연기를 피워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 방법이었다.옥녀봉에는 아름다운 선녀들의 전설이 있다. 옥녀봉은 선녀들이 달 밝은 보름날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맑은 강물에서 목욕하며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질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곳이다. 옥녀봉에서 바라본 넓은 평야와 금강이 만들어내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이다... 더보기
국립세종수목원 베어트리파크에서 나와 국립세종수목원에 왔다, 세종수목원은 국내 최초의 도심형 수목원이라고 한다. 정원은 국가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한 많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하니 눈길이 갔다.수목원에 들어서니 눈앞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수많은 나무가 나를 반기는 듯하다. 왼쪽으로 커다란 ‘사계절 전시 온실’이 있다. 이 온실은 ‘붓꽃’을 모티브로 디자인된 국내 최대 규모의 전시 온실이다.전시 온실 안에는 ‘지중해 온실’, ‘열대온실’, ‘특별 전시 온실’이 있다. 제일 먼저, 알함브라 궁전을 모티브로 조성된 ‘지중해 온실’로 향했다, 온실에서 바오밥나무 등 많은 진귀한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이를 지나, ‘열대온실’에서 수많은 고무나무를 보았다. 언제인가 보았던 꽃인 아열대 식물인 ‘베고니아’도 정확히 알게 되.. 더보기
세종 베어트리파크 아침부터 준비하여 세종특별자치시에 왔다. 세종특별자치시는 나에게는 살면서 인연이 없었다. 이제서야 길을 나서 세종 베어트리파크를 방문하였다. 베어트리파크는 보호가 필요한 곰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고자 설립되었다고 한다. 이 공간에 100여 마리의 곰들이 있으며, 곰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연구하고 있다고 하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이제 곰은 우리나라 산야(山野)에서 볼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철조망으로나마 곰을 바라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곰은 반달가슴곰이라 한다. 반달가슴곰은 잡식성이지만 식물성 먹이를 선호(選好)한다고 한다. 수명은 약 20년에서 30년 정도라고 하니 우리 인간에 비해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베어트리파크 입구에 들어서자, ‘오색 연못’을 만났다. 연못의 수많..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