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강경역 다시 강경이다. 이른 아침에 강경역(江京驛)에 나왔다. 거리에서 바라본 강경역의 지붕에 아침햇살이 걸리고 있었다.1911년 호남선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강경역은 논산과 익산의 경계에 있다. 과거에는 강경역에도 급수탑이 있었으나 30여 년 전 철거되어 현재에는 찾아볼 수 없다. 과거 포구가 유명했던 마을이 철도와 도로 같은 육지 교통이 발달하면서 점차 쇠퇴하고, 한국전쟁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황폐화하여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한다. 1957년 육군 논산 훈련소 연무대역과 연결하는 강경선 개통에 이어, 1987년 현재의 역사가 준공되었다. (역사 앞 간판에서)이제는 김장 김치를 담그는 철이 되면 젓갈을 사러 오는 사람이나 근대문화유산(近代文化遺産)을 보러 오는 사람이 강경역을 찾고 있다.역(驛)에는 강경(.. 더보기 권율장군묘 양주관아를 나와 권율장군묘로 왔다. 권율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의 영웅이다. 권율 장군의 묘 입구가 외삼문으로 만들어져 있어 놀랐다.권율(權慄, 1537-1599) 장군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아버지는 권철(權轍)이다. 1582년(선조 15) 문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시 행주대첩의 공으로 도원수에 올랐다. 1604년(선조 37) 선무공신 1등 영가 부원군에 추봉(追封)되었으며, 시호는 충장(忠莊)이다.외삼문으로 들어서니 잘 꾸며진 잔디밭을 지나, 산 위의 높은 곳에 권율 장군의 묘가 눈에 들어왔다. 옆의 계단을 통해 묘로 발길을 옮겼다. 드디어 도착한 묘역(墓域)이다. 묘역에는 장군의 묘를 중심으로 좌우에 전(前)부인 창녕 조(趙)씨와 후(後)부인 죽산 박(朴)씨가 안장되어 있다. 권율 장.. 더보기 양주관아 나리농원을 나와 양주관아(揚州官衙)로 왔다. 양주관아는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건물로, 417년간 양주목을 다스리던 관청이 있던 곳이었다. 양주 관아지에 대한 경기읍지(京畿邑誌),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 등의 자료를 보면 객사, 형옥 등 많은 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며 폐허가 되어 관아의 규모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형태를 보아 큰 규모의 관아 건물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외삼문(外三門)을 지나 관아에 들어서니 흥겨운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양주 관아 탈놀이 풍물축제」이다. 흥겨운 축제는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양주 살판의 창작 전통 연회 공연을 지나 공연자와 관객이 하나 되는 흥겨운 마무리 한판인 흥겨운 백호 놀음이 진행되고 있.. 더보기 양주 나리농원 양주 나리농원에 왔다. 나리농원에는 「양주 천일홍 가을페스타」로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나리농원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가을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일 먼저 천일홍(天日紅)을 만났다. 아, 이 꽃이 천일홍이로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로구나.천일홍의 대표적인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 ‘불변(不變)’, ‘영원한 사랑’이다. 꽃의 이름처럼 붉은 기운이 천 일 동안 색이 바래지 않고 유지된다는 특징에서 유래되었다. 실제로 천일홍은 시든 후에도 본래의 화형과 색상을 오랫동안 간직하기 때문에, 연인에게 주는 꽃다발이나 선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기다립니다천일을 하루처럼 기다립니다무사하게 돌아오기를날마다 기도합니다당신이 돌아오지 않으면내가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나의 생명 나의 사랑꼭 돌아오세요...(중.. 더보기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회암사지를 나와 회암사지박물관으로 왔다. 박물관에는 회암사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회암사는 고려말 전국 사찰의 총본사였다, 당시 불교계를 이끌었던 고승들이 머물렀던 최고의 가람이었음을 알린다. 박물관에서 회암사의 창건과 관련한 지공선사(指空禪師), 나옹선사(懶翁禪師),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초상(肖像)을 볼 수 있었다.박물관에는 회암사지의 이야기가 있다. 사적 128호로 지정된 회암사지는 1997년부터 사찰의 중심 권역을 발굴 조사하였다. 회암사는 일반적인 사찰과는 달리 궁궐과 유사한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조선 전기에 회암사에서는 공식적인 왕의 행차가 자주 있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는 스승을 만나기 위하여 공식적으로 회암사를 4차례 방문하였다고 하니 큰 사찰(寺刹)이었다.양주 회암사지는 발.. 더보기 양주 회암사지 이른 아침부터 준비하여 양주 회암사지(檜巖寺址)에 왔다. 양주로 가는 길, 하늘이 맑다. 지나는 길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고향이 있어 부러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양주 회암사지는 고려 말, 조선 초 최대 왕실 사찰(寺刹)이자 대표적인 선종사원 유적이다. 창건 시기는 기록을 통해 12세기로 추정되며, 고려 말 인도의 승려로 회암사에 머물며 불법을 전파하기도 한 지공선사의 말씀에 따라 나옹선사가 14세기에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무학대사가 머물러 태조 이성계가 자주 행차하였으며,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에는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후 효령대군,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 중종의 비인 문정왕후 등이 회암사에 대규모의 불사를 단행하여 전국 제일의 도량이 되었다. 17세기까지 역대 왕과 왕비들의 위패를 봉안했던.. 더보기 강경 근대거리 오래전, 강경은 시대를 앞서가던 근대(近代)의 중심지였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각종 젓갈과 어패류가 거래되던 곳. 하지만 이제 거리는 한적(閑寂)하다. 그 시절의 영광은 이제 역사(歷史)가 되어 이방인을 맞이하고 있다.강경의 근대거리를 걸었다. 전체 공간을 소개하는 웰컴센터에서 길을 걸었다. 1900년대 의상과 당시의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는 양장점을 지났다. 길을 가다 만나는 딴스홀이라는 간판은이제는 그런 단어를 쓰지 않지만, 그래서 운치(韻致) 있다. 강경에서 열리는 무도 연회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간판만 있고 내부는 닫혀있는 듯하다. 그 시절 딴스(dnace)를 즐기던 근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길을 걸어 강경 씨네마와 1900년대 분위기로 이루어진 포토 스튜디오인 갱갱 사진관 간판.. 더보기 구 강경침례교회 최초 예배지 문학관(文學官)에서 나와 얼마 걷지 않아 오래된 한옥이 눈에 들어왔다. 기독교 한국침례회 최초 예배지(禮拜地)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한옥으로 들어가 사진에 담았다.이 한옥은 1986년 폴링 선교사가 서울에서 내려와 한국 침례교회의 첫 예배를 드렸던 포목 장수 지병석의 집으로 논산시 향토 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침례교회이면서 한강 이남에서 지어진 최초의 'ㄱ'자 교회로 당시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남녀유별(男女有別)이 엄격했던 유교 전통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예배지 앞 설명에서)예배지의 역사를 보면 안타깝다. 일제의 우리 민족의 말살정책과 항일사상 근거지를 없애기 위해 전국적으로 시행된 신사 참배 운동과 이곳에 신사를 짓는다는 명분으로 1943년에 교회를 폐교하여 방.. 더보기 이전 1 2 3 4 ···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