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양주 나리농원 양주 나리농원에 왔다. 나리농원에는 「양주 천일홍 가을페스타」로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나리농원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가을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일 먼저 천일홍(天日紅)을 만났다. 아, 이 꽃이 천일홍이로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로구나.천일홍의 대표적인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 ‘불변(不變)’, ‘영원한 사랑’이다. 꽃의 이름처럼 붉은 기운이 천 일 동안 색이 바래지 않고 유지된다는 특징에서 유래되었다. 실제로 천일홍은 시든 후에도 본래의 화형과 색상을 오랫동안 간직하기 때문에, 연인에게 주는 꽃다발이나 선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기다립니다천일을 하루처럼 기다립니다무사하게 돌아오기를날마다 기도합니다당신이 돌아오지 않으면내가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나의 생명 나의 사랑꼭 돌아오세요...(중.. 더보기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회암사지를 나와 회암사지박물관으로 왔다. 박물관에는 회암사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회암사는 고려말 전국 사찰의 총본사였다, 당시 불교계를 이끌었던 고승들이 머물렀던 최고의 가람이었음을 알린다. 박물관에서 회암사의 창건과 관련한 지공선사(指空禪師), 나옹선사(懶翁禪師),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초상(肖像)을 볼 수 있었다.박물관에는 회암사지의 이야기가 있다. 사적 128호로 지정된 회암사지는 1997년부터 사찰의 중심 권역을 발굴 조사하였다. 회암사는 일반적인 사찰과는 달리 궁궐과 유사한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조선 전기에 회암사에서는 공식적인 왕의 행차가 자주 있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는 스승을 만나기 위하여 공식적으로 회암사를 4차례 방문하였다고 하니 큰 사찰(寺刹)이었다.양주 회암사지는 발.. 더보기 양주 회암사지 이른 아침부터 준비하여 양주 회암사지(檜巖寺址)에 왔다. 양주로 가는 길, 하늘이 맑다. 지나는 길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고향이 있어 부러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양주 회암사지는 고려 말, 조선 초 최대 왕실 사찰(寺刹)이자 대표적인 선종사원 유적이다. 창건 시기는 기록을 통해 12세기로 추정되며, 고려 말 인도의 승려로 회암사에 머물며 불법을 전파하기도 한 지공선사의 말씀에 따라 나옹선사가 14세기에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무학대사가 머물러 태조 이성계가 자주 행차하였으며,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에는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후 효령대군,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 중종의 비인 문정왕후 등이 회암사에 대규모의 불사를 단행하여 전국 제일의 도량이 되었다. 17세기까지 역대 왕과 왕비들의 위패를 봉안했던.. 더보기 강경 근대거리 오래전, 강경은 시대를 앞서가던 근대(近代)의 중심지였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각종 젓갈과 어패류가 거래되던 곳. 하지만 이제 거리는 한적(閑寂)하다. 그 시절의 영광은 이제 역사(歷史)가 되어 이방인을 맞이하고 있다.강경의 근대거리를 걸었다. 전체 공간을 소개하는 웰컴센터에서 길을 걸었다. 1900년대 의상과 당시의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는 양장점을 지났다. 길을 가다 만나는 딴스홀이라는 간판은이제는 그런 단어를 쓰지 않지만, 그래서 운치(韻致) 있다. 강경에서 열리는 무도 연회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간판만 있고 내부는 닫혀있는 듯하다. 그 시절 딴스(dnace)를 즐기던 근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길을 걸어 강경 씨네마와 1900년대 분위기로 이루어진 포토 스튜디오인 갱갱 사진관 간판.. 더보기 구 강경침례교회 최초 예배지 문학관(文學官)에서 나와 얼마 걷지 않아 오래된 한옥이 눈에 들어왔다. 기독교 한국침례회 최초 예배지(禮拜地)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한옥으로 들어가 사진에 담았다.이 한옥은 1986년 폴링 선교사가 서울에서 내려와 한국 침례교회의 첫 예배를 드렸던 포목 장수 지병석의 집으로 논산시 향토 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침례교회이면서 한강 이남에서 지어진 최초의 'ㄱ'자 교회로 당시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남녀유별(男女有別)이 엄격했던 유교 전통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예배지 앞 설명에서)예배지의 역사를 보면 안타깝다. 일제의 우리 민족의 말살정책과 항일사상 근거지를 없애기 위해 전국적으로 시행된 신사 참배 운동과 이곳에 신사를 짓는다는 명분으로 1943년에 교회를 폐교하여 방.. 더보기 강경산 소금문학관 옥녀봉에서 산기슭의 강경산 소금문학관으로 걸어 내려왔다. 소금문학관에는 작가 박범신의 삶과 이야기와 문학이 있다.자연과 문화의 연장으로 세워진 소금문학관은 내일을 살아갈 우리에게 강경의 정체성 인식과 자연을 누리는 휴양을 제공하고 누구든 문화의 소중한 가치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며 강경 문화 바람의 시작이 될 것이다. (소금문학관 브로셔에서)작가로서 나의 삶은 늘 현재 진행형이다, 날마다 고통스럽고 날마다 황홀하다. (소설 「소금」 작가의 말 중에서)- 사랑과 꿈과 기억과 눈물이 가득한 이곳을가만히 있으면 들려빈 산이 돌아눕는 소리버림받은 사람들의 쉰 기침 소리굽잇길마다 찬 서리 내리고봄은 아직 망루 너머 있는데사랑해요 먼 당신괘종시계는 무엇으로 길을 내고겨울 철새는 어떻게 길을 지우며 가는.. 더보기 해조문 옥녀봉을 내려오는 길에 해조문(解潮文)을 만났다. 해조문은 1996년에 논산시의 향토문화유산(鄕土文化遺産)으로 지정되었다.해조문은 조선시대 해양과학(海洋科學)의 기록(記錄)이다. 1860년에 제작된 암각문(岩刻文)으로 강경읍 금강 변 옛 강경포구 옆 옥녀봉 정상 근처의 바위 절벽에 음각으로 평면을 만들고 총 190자의 글자를 새겨 강경포구의 밀물과 썰물의 발생 원인과 시각, 높이를 기록한 조석표(潮汐表)이다. 해조문은 시각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수심의 높낮이를 계량화하여 기록함으로써 현대적 조석표의 구성요소를 구비한 획기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해조문 앞 설명에서)포구(浦口)에서 누구라도 쉽게 보고 고기잡이와 항해 소금 생산 등 해양 관련 부문에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조문을 새겨 놓은 곳은 강.. 더보기 옥녀봉 봉수대 다시 강경이다.강경 옥녀봉(玉女峰)에 왔다. 옥녀봉의 옛 이름이 강경산이다. 옥녀봉(44m)은 봉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높지 않다. 그래도 인근이 평야 지대라 전망(展望)이 좋다.금강이 감돌아 흐르는 강 언덕의 강경산은 풍치(風致)가 아름답고 수운정(垂雲亭)이라는 정자와 봉수대가 있었다. 봉수(烽燧)란 높은 산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여 나라에 일이 생기면 밤에는 횃불을 낮에는 연기를 피워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 방법이었다.옥녀봉에는 아름다운 선녀들의 전설이 있다. 옥녀봉은 선녀들이 달 밝은 보름날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맑은 강물에서 목욕하며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질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곳이다. 옥녀봉에서 바라본 넓은 평야와 금강이 만들어내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이다... 더보기 이전 1 2 3 4 ···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