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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 집터 수원 팔달문(八達門)을 지나 종로(鐘路)를 걷는 길에 1층에 약방으로 운영되는 3층 건물이 있다. 길가에 수원의 독립운동가 김세환 선생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김세환 선생의 생가터를 알리는 표지판이다. 이제는 생가(生家)는 존재하지 않고 그의 숨결만 느껴진다. 건물 옆에는 청과물 가게가 있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다.김세환(1889-1945) 선생은 민족 대표 48인으로 3·1운동에 참여하였고, 수원 지역 3·1운동을 계획하고 준비한 독립운동가이다. 이후 기독교 문화운동과 사회운동을 전개하였고, 신간회 지회 설립과 수원체육회를 주도하였다. 그의 유해는 1968년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며,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건물을 바라보며 .. 더보기
강경대흥시장 임리정에서 나와 강경의 골목길을 걸었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강경의 골목길은 좁지만 아름답다. 골목길을 걷다가 강경대흥시장(江景大興市場)이 있어 돌아보았다.강경읍은 강경포구와 강경젓갈로 유명한 곳이다. 강경시장의 역사는 17세기 말엽에 강경천 주변으로 형성되었으며, 19세기 말에는 대시장으로 부각하였다. 대구, 평양의 시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릴 정도로 전통과 역사가 있는 전통시장이다. 상업 도시 강경의 맥을 잇기 위해 1955년에 건립된 전통 재래시장은 최초에 5일장으로 개장하였으나, 현재는 상설 시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매월 4일과 9일에 5일장이 같이 열리고 있다. (길가의 설명에서)강경대흥시장은 가게마다 젓갈을 내놓고 있었다. 시장을 거닐며 이렇게 많은 종류의 젓갈이 있었는지 놀랐다... 더보기
임리정 죽림서원 오른쪽, 약간 높은 언덕에 임리정(臨履亭)이 있다. 임리정은 조선 인조 4년(1626) 사계 김장생 선생이 정자를 짓고 후학들에게 강학(講學)하던 곳이다.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있는 임리정에 올라 선조들의 지혜(智慧)를 공부하였다.임리정(臨履亭)은 원래는 황산정(黃山亭)이라 하였으나 임리정기비(臨履亭記碑)에 의하면 “두려워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며, 얇은 얼음을 밟은 것같이 하라.”라는 구절에서 임리정이라 하였다 한다. 이처럼 몸가짐을 두려워하고 조심하라는 선인들의 뜻이 있다. (임리정 앞 설명에서)임리정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이다. 고색창연한 임리정을 들러보았다. 임리정 마루에 앉아 오래전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선인들을 상상해 보기도 하였다.임리정을 나오니 커다란 나.. 더보기
죽림서원 팔괘정(八卦亭)에서 내려와 죽림서원(竹林書院)의 문을 두드렸다. 서원은 조선시대 선현 봉사와 후진 양성을 담당하던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서원은 근대를 맞이하면서 교육기관으로의 기능은 사라지고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기능만 남게 되었다.문을 열고 들어간 죽림서원은 크지 않다. 서원의 제사 공간에는 들어갈 수 없다. 마당에는 두 개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있다. 죽림서원은 고종 때, 서원 철폐 명령으로 인해 훼철 대상이 되었지만, 이후 지역 유림(儒林)의 노력으로 1960년대에 복원되어 현재까지도 제향 등의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죽림서원은 1626년에 황산서원으로 창건되어 1665년 죽림서원으로 사액을 받았으며 율곡이이, 우계 성혼, 사계 김장생,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우암 송시열 등 문묘에 배향된.. 더보기
팔괘정 전망대에서 내려와 전망대 기슭의 팔괘정(八卦亭)에 왔다. 팔괘정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이다. 산기슭에 있는 정사각형 모습의 팔괘정은 아름답다. 팔괘정의 처마를 사진에 담고는 마루에 앉아 금강을 바라보았다. 금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팔괘정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스승인 김장생 선생이 강학(講學)하던 임리정으로부터 100여미터 떨어져 있다. 스승과 가까이 있고 싶은 제자의 마음으로 1663년 팔괘정을 건립하고 금강의 수려한 경관을 즐겼다고 한다. (팔괘정 앞 설명에서)송시열은 팔괘정에서 공부하며 김장생의 학맥을 이어갔다. 송시열은 이 정자를 지으면서 창살무늬를 팔괘(八卦)로 꾸몄고 그로 인해 정자 이름을 ‘팔괘정’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1963년 강경에서 ‘스승의 날’이 발원된 일이 300여 년 전의 ‘.. 더보기
황산근린공원 전망대 금강 변(邊)을 걷다가 황산근린공원 전망대가 있어 올랐다.황산근린공원은 돌산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리며 1960년대까지 채석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흔적이 남아있다. 돌산전망대는 2008년에 완공되어 계단을 타고 오르면 사방으로 열려있어 강경에서 가장 좋은 전망대이다. (길가의 설명에서)전망대를 오르는 길에 박범신 기념비가 있었다. 기념비 앞에 박범신 작가의 작품 중 일부가 있어 적어보았다.- 안개 낀 날의 새벽 강은 더욱 웅숭지고 찰지다. (박범신 소설 「더러운 책상」의 일부)계단을 올랐다. 공원에 있는 등대 모양의 하얀 전망대가 아름답다. 전망대에 올라 시내를 바라보았다. 돌산전망대 주변은 문화의 거리, 죽림서원, 임리정, 팔괘정과 연결되어 조망이 아름답다. 금강 상류와 부여 익산시까지 강경 전체를 한.. 더보기
강경포구 충청도와 전라도의 육지와 바다 사이에 위치하여 금강 남쪽 들판 가운데 하나의 큰 도회로 되었다. 바닷가 사람과 산골 사람이 모두 여기에서 물건을 내어 교역하며 봄 여름 동안 생선을 잡고 해초를 뜯을 때에 비린내가 마을에 넘친다. 큰 배와 작은 배들이 밤낮으로 마을에 넘친다, 큰 배와 작은 배들이 밤낮으로 두 갈래 진 항구에 담처럼 벌여있다. (1751년 이중환의 택리지 중에서)강경포구(江京浦口)는 조선시대 곡식과 해산물의 집산지로 '조선의 2대 포구'로 불릴 만큼 번성했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철도 발달로 쇠퇴한 역사적인 포구이다. 현재는 금강 하구둑으로 바다와는 분리되었지만, 근대 역사 거리와 함께 역사적 의미가 남아있다. (길가의 설명에서)1845년 10월 12일 김대건 신부 일행을 실은 작은 목선 라.. 더보기
강경갑문 강경의 길을 걷다가 강경갑문(江京閘門)을 만났다. 강경갑문은 조석(潮汐)에 지장을 받지 않으면서 화물의 하역과 선적 작업을 가능하게 하고 강물의 수위(水位)를 조절함으로써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1924년 강경읍 내를 관통하는 하천의 하류에 건립되었다. 근대기 산업시설로 가치가 큰 시설이었다. 지금은 국가 등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강경포구가 성시를 누리던 시절에 강경갑문은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은 명물(名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한적하여 인적이 드물다. 1990년 금강 하구둑이 만들어지면서 강경포구에 배가 들어오지 않게 되었고 강경갑문에 수해 방지용 수문이 설치되면서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였다.강경갑문은 밀물 때 도크(dock)에 물이 차면 배가 들어오고, 이때 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