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죽림서원 팔괘정(八卦亭)에서 내려와 죽림서원(竹林書院)의 문을 두드렸다. 서원은 조선시대 선현 봉사와 후진 양성을 담당하던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서원은 근대를 맞이하면서 교육기관으로의 기능은 사라지고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기능만 남게 되었다.문을 열고 들어간 죽림서원은 크지 않다. 서원의 제사 공간에는 들어갈 수 없다. 마당에는 두 개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있다. 죽림서원은 고종 때, 서원 철폐 명령으로 인해 훼철 대상이 되었지만, 이후 지역 유림(儒林)의 노력으로 1960년대에 복원되어 현재까지도 제향 등의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죽림서원은 1626년에 황산서원으로 창건되어 1665년 죽림서원으로 사액을 받았으며 율곡이이, 우계 성혼, 사계 김장생,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우암 송시열 등 문묘에 배향된.. 더보기 팔괘정 전망대에서 내려와 전망대 기슭의 팔괘정(八卦亭)에 왔다. 팔괘정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이다. 산기슭에 있는 정사각형 모습의 팔괘정은 아름답다. 팔괘정의 처마를 사진에 담고는 마루에 앉아 금강을 바라보았다. 금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팔괘정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스승인 김장생 선생이 강학(講學)하던 임리정으로부터 100여미터 떨어져 있다. 스승과 가까이 있고 싶은 제자의 마음으로 1663년 팔괘정을 건립하고 금강의 수려한 경관을 즐겼다고 한다. (팔괘정 앞 설명에서)송시열은 팔괘정에서 공부하며 김장생의 학맥을 이어갔다. 송시열은 이 정자를 지으면서 창살무늬를 팔괘(八卦)로 꾸몄고 그로 인해 정자 이름을 ‘팔괘정’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1963년 강경에서 ‘스승의 날’이 발원된 일이 300여 년 전의 ‘.. 더보기 황산근린공원 전망대 금강 변(邊)을 걷다가 황산근린공원 전망대가 있어 올랐다.황산근린공원은 돌산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리며 1960년대까지 채석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흔적이 남아있다. 돌산전망대는 2008년에 완공되어 계단을 타고 오르면 사방으로 열려있어 강경에서 가장 좋은 전망대이다. (길가의 설명에서)전망대를 오르는 길에 박범신 기념비가 있었다. 기념비 앞에 박범신 작가의 작품 중 일부가 있어 적어보았다.- 안개 낀 날의 새벽 강은 더욱 웅숭지고 찰지다. (박범신 소설 「더러운 책상」의 일부)계단을 올랐다. 공원에 있는 등대 모양의 하얀 전망대가 아름답다. 전망대에 올라 시내를 바라보았다. 돌산전망대 주변은 문화의 거리, 죽림서원, 임리정, 팔괘정과 연결되어 조망이 아름답다. 금강 상류와 부여 익산시까지 강경 전체를 한.. 더보기 강경포구 충청도와 전라도의 육지와 바다 사이에 위치하여 금강 남쪽 들판 가운데 하나의 큰 도회로 되었다. 바닷가 사람과 산골 사람이 모두 여기에서 물건을 내어 교역하며 봄 여름 동안 생선을 잡고 해초를 뜯을 때에 비린내가 마을에 넘친다. 큰 배와 작은 배들이 밤낮으로 마을에 넘친다, 큰 배와 작은 배들이 밤낮으로 두 갈래 진 항구에 담처럼 벌여있다. (1751년 이중환의 택리지 중에서)강경포구(江京浦口)는 조선시대 곡식과 해산물의 집산지로 '조선의 2대 포구'로 불릴 만큼 번성했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철도 발달로 쇠퇴한 역사적인 포구이다. 현재는 금강 하구둑으로 바다와는 분리되었지만, 근대 역사 거리와 함께 역사적 의미가 남아있다. (길가의 설명에서)1845년 10월 12일 김대건 신부 일행을 실은 작은 목선 라.. 더보기 강경갑문 강경의 길을 걷다가 강경갑문(江京閘門)을 만났다. 강경갑문은 조석(潮汐)에 지장을 받지 않으면서 화물의 하역과 선적 작업을 가능하게 하고 강물의 수위(水位)를 조절함으로써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1924년 강경읍 내를 관통하는 하천의 하류에 건립되었다. 근대기 산업시설로 가치가 큰 시설이었다. 지금은 국가 등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강경포구가 성시를 누리던 시절에 강경갑문은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은 명물(名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한적하여 인적이 드물다. 1990년 금강 하구둑이 만들어지면서 강경포구에 배가 들어오지 않게 되었고 강경갑문에 수해 방지용 수문이 설치되면서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였다.강경갑문은 밀물 때 도크(dock)에 물이 차면 배가 들어오고, 이때 물.. 더보기 구 강경노동조합 건물 아침의 강경거리를 걸었다. 골목을 지나 구 강경노동조합 건물이 우뚝하게 서 있다.이전에는 강경노동조합(江京勞動組合)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은 1925년에 건립된 근대 건축물이다. 강경노동조합은 강경포구에서 하역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결성한 조직체로 당시 상업이 크게 발달했던 강경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건물 앞 설명에서)전통적인 한옥(韓屋) 구조에 상가(商家)의 기능을 더해 근대 한옥의 변천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구조는 한식이지만 1층의 차양과 지붕 장식재, 변화된 툇마루 등이 일본 건축양식의 특징을 띠며 보존 상태가 좋아 보존 가치가 큰 건물이다. 건축 당시에는 2층이었으나 현재는 1층만 남아있다.현재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강경 역사문화안내소(歷史文化案內所)로 사용되고 있다고 .. 더보기 강경역 다시 강경이다. 이른 아침에 강경역(江京驛)에 나왔다. 거리에서 바라본 강경역의 지붕에 아침햇살이 걸리고 있었다.1911년 호남선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강경역은 논산과 익산의 경계에 있다. 과거에는 강경역에도 급수탑이 있었으나 30여 년 전 철거되어 현재에는 찾아볼 수 없다. 과거 포구가 유명했던 마을이 철도와 도로 같은 육지 교통이 발달하면서 점차 쇠퇴하고, 한국전쟁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황폐화하여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한다. 1957년 육군 논산 훈련소 연무대역과 연결하는 강경선 개통에 이어, 1987년 현재의 역사가 준공되었다. (역사 앞 간판에서)이제는 김장 김치를 담그는 철이 되면 젓갈을 사러 오는 사람이나 근대문화유산(近代文化遺産)을 보러 오는 사람이 강경역을 찾고 있다.역(驛)에는 강경(.. 더보기 권율장군묘 양주관아를 나와 권율장군묘로 왔다. 권율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의 영웅이다. 권율 장군의 묘 입구가 외삼문으로 만들어져 있어 놀랐다.권율(權慄, 1537-1599) 장군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아버지는 권철(權轍)이다. 1582년(선조 15) 문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시 행주대첩의 공으로 도원수에 올랐다. 1604년(선조 37) 선무공신 1등 영가 부원군에 추봉(追封)되었으며, 시호는 충장(忠莊)이다.외삼문으로 들어서니 잘 꾸며진 잔디밭을 지나, 산 위의 높은 곳에 권율 장군의 묘가 눈에 들어왔다. 옆의 계단을 통해 묘로 발길을 옮겼다. 드디어 도착한 묘역(墓域)이다. 묘역에는 장군의 묘를 중심으로 좌우에 전(前)부인 창녕 조(趙)씨와 후(後)부인 죽산 박(朴)씨가 안장되어 있다. 권율 장.. 더보기 이전 1 2 3 4 ··· 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