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선암계곡을 나와 사인암(舍人巖)에 왔다. 차에서 내리니 작은 사찰 쳥련암이 눈에 들어왔다. 사인암은 청련암에 속한 작은 암자이다. 청련암(靑蓮庵)을 지나 그다지 놓지 않은 계단으로 사인암에 올랐다. 오르는 길에 인생무상을 말하는 우탁(禹倬) 선생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


한 손에 막대를 잡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고 하였더니
백발이 제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탄로가(歎老歌)/우탁)

사인암(舍人巖)은 단양팔경 중 하나로 푸른 계곡을 끼고 있는 70m 높이의 기암절벽이다. 고려 말의 학자 우탁(1263-1343) 선생이 정4품 ‘사인재관’ 벼슬에 있을 때 휴양하던 곳이라 해서 사인암이라 불리게 되었다. 기암절벽 위에 서 있는 노송이 멋스럽다. 우탁 선생이 직접 새긴 ‘뛰어난 것은 무리에 비유할 것이 없으며 확실하게 빼지 못한다. 혼자서도 두려운 것이 없으며 세상에 은둔해도 근심함이 없다.’는 뜻의 글씨가 암벽에 남아 있다. 하지만 접근하기 쉽지 않아 볼 수 없었다.

사인암에서 내려와 흔들다리를 건넜다. 다리가 놓인 계곡은 운선구곡(雲仙九曲)이다. 이 또한 단양팔경 중 하나로 풍광이 빼어나다.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 김홍도가 그린 단원 화첩에도 사인암과 계곡의 절경이 남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사인암 아래 앉아 기암절벽을 싸고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면 옛날 선비들이 이 자리에 앉아 시 한 수 읊었을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 우탁(禹倬, 1262-1342)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1308년, 감찰규정(監察糾正)이 되었고, 음력 11월 24일 충선왕이 부왕의 후궁인 숙창원비(淑昌院妃)와 통간(蒸)하자, 백의(白衣) 차림에 도끼를 들고 거적자리를 짊어진 채 대궐로 들어가 극간을 하였다. 그는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예안(禮安)에 은거하면서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충청북도 단양군에 있는 명승지로 단양팔경의 하나인 사인암(舍人巖)은 그가 고려 말기에 사인 벼슬로 있을 때 그곳에 휴양을 가서 이름이 붙여졌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