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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독립문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의 서대문 독립공원에 왔다. 서대문 독립공원은 뼈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동시에 시민들의 휴식처이며, 공원 속의 체육시설을 이용하여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곳이고 아이들의 산교육 장소이기도 하다.


길가에 보이는 독립문은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세운 것이다, 우리 민족의 자발적인 참여로 서재필이 조직한 독립협회가 모금을 주도하고 고종의 승인을 얻어 1897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러시아인 사바찐이 설계하고 심의석이 공사하였다, 독립문의 중앙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가운데 이맛돌에는 대한제국의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를 새겼다. 문의 앞면과 뒷면에 있는 현판석에는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을 새기고 좌우에는 태극기를 새겼다. 원래 큰길 가운데 있었지만 1979년에 성산대로를 공사하면서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고교 시절에 TV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

독립문의 독립은 식민 통치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홀로 설 수 있는 주권국가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 시절은 일제강점기 이전이니 생각해 보면 그렇다. 독립문은 주권을 위협하는 열강들 사이에서 주권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세계에 알리려는 모든 국민의 노력이 담긴 역사적 기념물이다.

독립문 바로 옆에 영은문 주초가 있다. 모화관 앞에 있던 영은문의 기둥을 밭쳤던 돌로 사람들에게 역사를 알리고 있다. 영은문을 철거하면서 기둥을 받치고 있던 돌만 남게 되었고 성산대로를 공사하면서 독립문과 함께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근처에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의 동상이 있었다. 선각자 서재필 선생에게 감사의 예를 표하고 독립관으로 올라갔다.

● 사바찐은 러시아의 건축가로 덕수궁 정관헌과 왕실도서관인 중명전, 독립문을 설계하였으며, 인천에서는 제물포구락부, 일본 제58은행 인천지점을 설계하였다. 민비 시해 당시 같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심의석[(沈宜錫, 1859-1927)은 구한말의 건축가이다. 원구단, 협률사, 덕수궁 석조전 등을 건립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책을 읽으면 독립문 현판은 친일파 이완용의 작품이라고 한다. 독립문 건설 당시에 기부금을 제일 많이 냈고 당시 조선 제일의 명필이었다. 쓰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다. (경향신문, 2021. 08. 30 일자)

● 모화관은 조선 시대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던 곳으로 중종 32년에 그 앞에 홍살문을 세웠으며 얼마 후에 영은문이라 고쳤다. 철거되기 전의 영은문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는데 두 개의 긴 주춧돌 위에 원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었으며 지붕은 푸른색 기와로 덮고 각종 동물 모양을 조각물을 배치하였다. (독립문을 지나는 길의 현판에서)

● 서재필(1864-1951) 선생은 개화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6년 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윤치호, 이상재의 협력을 얻어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사대의 상징이었던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국민의 성금을 모아 독립문을 세웠다. 또한,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고치고 독립협회의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시민들을 모아 만민공동회를 조직하여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의 조차 요구에 반대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임시정부 구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외교활동을 전개하였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 경비에 바치는 등 조국의 독립에 헌신하였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으며, 유해를 봉환하여 국립 현충원에 안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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