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근대문화거리는 4.4 솜리만세운동길과 중첩되어 있다. 이방인들은 몇 번을 돌아보아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길에서 만나는 건물들은 쇠락하여 있고 상가 안에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지 않는다.

걸어서 만나는 지명 솜리. 솜리는 익산의 옛 이름인 이리의 우리말이다, 이곳은 인화동과 주현동 일대의 한적한 작은마을이었으나 1914년 철도가 개통되고 역이 생기면서 주변에 시가지가 형성되고 시장이 개설되면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일제강점기에는 대교농장을 비롯한 농장들이 있었고 현재의 남부시장인 이리시장과 우시장을 중심으로 상권이 집중되었다고 한다.

광복 후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상점들이 형성되면서 사람들이 붐볐던 곳이지만 1970년대 말부터 도시가 확장되고 상권이 분산되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 근현대에 건립된 상가와 주택이 밀집되어 독특한 경관을 이룬다. 철도 개설로 인 한 교통의 이점을 기반으로 성장한 도시, 익산 사람들의 생활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1919년 익산지역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익산 근대거리에서 많은 등록문화재를 만났다. 길을 걷다가 금풍상회와 이사도라 주단 등 길을 걷다가 많은 등록문화재를 만났다. 혹 걷다가 지나쳐버린 곳도 있다. 곳곳에 건물을 수리하는 사람들의 손길도 조심스러워 보였다. 이제는 쇠락하였으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곳 익산 근대거리이다.

● 금풍상회는 2층 구조의 목조 주택으로 근대에서 현대로 전환하는 시점, 과도기적 건물의 공간 구성과 다양한 건축적 요소와 재료를 볼 수 있는 건물이다. 해방 이후에는 상생협력상가 자리에 있었던 호남기업사 사장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문화재 앞 간판에서)
● 이사도라주단 건물은 쌍방울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형제상회가 있던 곳이다. 한국전쟁 중에 구시장 노점에서 양말 장사를 해서 도매업으로 성장한 이봉녕, 이창녕 형제는 형제상회를 설립하고, 1955년 이곳으로 점포를 확장해서 이전했다. (문화재 앞 간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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