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의 칠백의총에 왔다. 칠백의총(七百義塚)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조헌, 영규 대사를 비롯한 700여 명의 의사가 묻힌 묘역이다. 1963년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성역화되었다.

기념관 앞에 주차하고 칠백의사 순의탑(殉義塔)을 지나 걸어 들어갔다. 순의탑은 칠백의총을 마주 보는 곳에 있고 실제 싸웠던 전적지인 연곤평이 내려 보이는 곳이다. 이를 지나 의총문(義塚門)을 통하여 종용사(從容祠)에 들어섰다, 종용사는 금산 싸움에서 순절한 선열들의 영혼을 모신 위패가 있다. 조선 현종 조에 건축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항일 유적 말살 정책으로 훼손되었고 해방 이후 복원되었다. 역사의 지난(至難) 함이 이곳에도 있었다.

드디어 칠백의총을 보았다. 700여 구의 시신이 묻힌 의총은 거대하다. 조헌은 의병장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1,700여 명의 의병을 일으켜 영규 대사와 합세하여 청주를 탈환하였고, 왜군을 막기 위하여 남은 군사 700명과 함께 금산 전투에서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였다. 그들이 전사한 후 시체를 거두어 이곳에 무덤을 만들었다. 의총을 사진에 담고 묵념하였다. 이분들이 있어 지금 우리가 있다.

돌아 나오며 기념관에 들렀다. 금산 전투에 관한 동영상도 보았다. 나라를 위해 쓰러져간 칠백의사들의 결의를 볼 수 있었다. 나오는 길에 칠백의사 정신이 쓰여있는 비석이 있었다. 비석에서 금산 벌판에서 구름처럼 밀려오는 왜적들을 맞서 순국한 칠백의사의 거룩한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조국수호(祖國守護)
신의단결(信義團結)
학행일치(學行一致)
● 조헌(趙憲, 1544-1592)은 조선 중기에 이이의 학문을 계승한 유학자이자,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병장이다. 금산 전투에서 의병 700여 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한국사 사전 3 - 나라와 민족, 기구와 단체, 역사 인물)
● 영규(靈圭, ?-1592) 대사는 조선 중기의 승병장(僧兵將)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아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를 수복하고 금산에 이르러 일본군과 격전 끝에 순국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