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와룡묘


남산길을 걷다가 보이는 와룡묘까지 왔다. 홍살문으로 들어가 계단으로 올라갔다. 문이 닫혀 있어 밖에서 서성대는데 외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이 나를 보고 웃었다. 멀리 서울 시내가 내 눈에 들어왔다.


와룡묘를 들러보았다. 와룡묘(臥龍墓)는 제갈량을 모시는 신당이다, 제갈량을 와룡(臥龍)이라고도 일컬었기 때문에 이곳을 와룡묘라고 하였다. 와룡묘는 192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34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모습은 1976년에 보수하였다. 와룡묘 경내에는 정진인 와룡묘와 단군성전, 삼성각이 있는데 이 건물들은 순서대로 높이를 달리하여 지형에 맞게 서 있다. 이 묘사(墓祠)의 정전인 와룡묘는 내부에 제갈량 상(像)과 관우 상(像)이 모셔있다. 제갈량과 관우, 단군, 산신 등을 모신 신당(神堂)으로 중국의 신앙과 우리의 토속신앙이 결합한 독특한 신앙 형태를 하고 있다. (묘 앞의 설명에서)

건물 앞에서 예(禮)를 취하고 입구의 계단에 앉아 시내를 바라보았다. 하늘은 맑아 구름 한 점 없었다.

● 제갈량(諸葛亮, 181-234)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 겸 전략가이다.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유비(劉備)를 도와 오(吳)나라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曹操)의 대군을 적벽(赤壁)의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점령하였다. 221년 한나라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승상이 되었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관우(關羽, 160-?)는 삼국지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지금도 역대 왕조를 비롯하여 민간에서도 굉장히 높은 인기와 명성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무(武)와 충(忠), 의리(義理)와 재물(財物)의 화신(化神)으로 인지되며 오늘날까지도 신으로서 숭앙을 받고 있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국내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0) 2024.08.30
조지훈 시비  (0) 2024.08.28
옛 중앙정보부 별관  (0) 2024.08.23
서울천년타임캡슐광장  (0) 2024.08.21
아우내 장터  (1) 2024.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