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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피맛골



종각에 왔다. 종각 건너편에 교보빌딩이 보였다. 젊은 시절 잠시 인연이 있었던 곳이어서 그런지 바라만 보아도 좋다. 종로의 수많은 빌딩은 우리나라의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피맛골을 걸었다. 높은 분들이 지나가면 모두 큰절을 해야 하는 시절, 그들은 종로의 뒷길로 스며들어 피맛골을 만들었다. 장사하는 사람들, 손님들과 섞여 제 피맛골은 잘 정비되어 깨끗하다. 하지만 오랜 시절의 정다운 풍경이 사라져 아쉬운 부분이 있다.

길을 걷다 군데군데 건물이 재건축되는 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유리로 막아 전시하고 있다. 이를 보면 그 시절의 사는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래전 있었던 작고 허름한 선술집들은 사라졌다. 걷다 보니 조선 시대 청진지구 푯말이 보였다. 이 일대는 시전(市廛)의 부유한 상인들과 관청에서 직책을 맡았던 중인들의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또 걸어 조선 시대 관리나 양반의 윤리에 관한 범죄를 담당하던 관아자리인 의금부(義禁府) 터가 보였다. 잠시 서서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한밤중이지만 사람들이 길을 지나고 있었다.

● 조선 시대 종로는 궁궐과 관가가 가까워 가마나 말을 탄 고관대작의 왕래가 잦은 큰길이었다, 그 시절, 하급 관료나 서민들이 큰길을 가다가 고관대작을 만나면 길가에 엎드려 예의를 표했는데 이런 일이 많아지자 번거로워 서민들이 아예 큰길 양쪽 뒤편의 좁은 길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 기를 따라 목로주점 모주집, 장국밥집이 연이어져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되었고 말을 피하는 골목이라 하여 피맛골 또는 피마길이라고 불렀다. (입구의 설명에서)

● 오늘날 종로의 북측지역에 해당하는 청진지구 일대는 길가로 시전 행랑이 즐비한 운종가가 들어서고 경복궁 및 육조와 인접했으며 의금부, 수진궁, 사복시, 제용감 등 관영시설이 있었다, 관청과 시전의 배후지였던 덕분에 청진동 일대에는 시전의 부유한 상인과 관청에서 직책을 맡았던 중인들의 주택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입구의 설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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