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명동은 지나는 이들이 많다. 길을 걸어 명동성당 앞으로 왔다. 성당 앞 언덕 아래에 이재명 의사 의거 터라는 표석(標石)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묵념을 하고 의사에게 예(禮)를 표하였다.

1909년 12월 22일. 명동성당에서 레오폴드 벨기에 국왕의 추도식에 참여하였던 이완용이 인력거를 타고 앞을 지나갔다. 이재명 의사는 칼을 들고 뛰어나가 이완용에게 달려들었다. 인력거부가 앞을 막아 칼을 찔러 쓰러뜨리고는 인력거 위에 있는 이완용의 허리를 찔렀다. 겁에 질린 이완용이 인력거 아래로 떨어졌고, 이재명 의사는 이완용을 타고 앉아 어깨와 등을 찔러 이완용은 비명을 질렀다.
의사는 목적이 달성하였다고 생각하고 독립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경호하던 순사들이 몰려들어 칼로 대항하였지만, 포박당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용모가 장대하고 광채가 나는 의사는 당당한 모습으로 외쳤다.
“나는 여러 동포를 구제하기 위하여 이 일을 한 것인데 너희들은 어찌 구경만 하고 있느냐? 오늘 나는 나라의 원수를 갚았으니 통쾌하다.”
이재명 의사는 법정에서도 태연하고 담담한 어조로 이완용의 죄를 꾸짖고 나라를 위하여 처단함이 당연함을 강조하였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이제 세월이 흘러 그 자리에는 표지석만 남아 역사를 말하고 있다. 명동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이재명(1890-1910)은 평북 선천 출생으로, 1909년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을 칼로 찔렀으나, 복부와 어깨에 중상만 입히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이듬해 순국하였다.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 벨기에의 왕 레오폴드 2세 (Leopold II, 재위 1865-1909)는 대외적으로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 군비를 강화하였고 정국 안정에 노력하였다. 식민정책을 추진하여 콩고자유국을 왕의 사유지로 만들었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하지만, 그는 식민지 유지를 위하여 식민지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일하는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팔목까지 잘랐던 학살자였다. (해설사의 설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