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20코스를 걷기 위하여 제주 해녀박물관으로 왔다. 이번 코스는 세화마을에서 김녕 포구를 반대편에서 걸어가는 코스이다. 주황색 리본을 보며 걸어가는 길이다.


세화마을의 마을 길을 구불구불 걷다 보니 바다가 보였다 사라지곤 하였다. 그러다가 들판을 걷게 되었다. 벵듸길을 걸었다, 평대 마을은 벵듸 또는 벵디라고 불렸다. 벵듸는 돌과 잡풀이 우거진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어로 마을 유래를 짐작하게 하는 옛길이다. 그러다 만나는 좌가연대(佐可煙臺)에서 잠시 쉬어갔다.


걷다 보니 행원 포구까지 왔다. 포구의 바람이 차다. 다시 길을 걷는다. 다시 길을 걸어 만나는 박노해 시인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 (걷는 독서/박노해)
월정리 해수욕장을 지났다. 바람이 세다. 제주 밭담 테마공원에 왔다. 제주 밭담은 오랫동안 제주 선인(先人)들의 노력으로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농업유산이다. 바람을 걸러내고 토양유실을 막아내며 마소의 농경지 침입을 막아 농작물을 보호한다고 한다. (길가의 설명에서)
바닷가 길을 걸었다. 환해장성이 걸어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바람이 워낙 드세어 때로는 바닷가의 올레길을 걷지 못하고 올레길을 가늠하며 해안도로를 걸었다. 성세기 태역길로 왔다, 태역은 잔디를 일컫는 제주 말이다, 잔디가 많아 제주올레가 붙인 이름이다.
김녕 성세기 해변을 지났다, 거대한 용암대지 위에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성세기 해변은 김녕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성세기라는 이름은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한 작은 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계속해서 길을 걸어 세기알 해변으로 왔다, 빨간 등대와 풍력발전기, 그리고 파란 바닷물이 어우러져 그림엽서와 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곳이 세기알 해변이다. 해변을 걸어 방파제를 따라 이동하니 작은 포구가 나온다. 포장도로가 생기고 방파제가 축조되면서 옛 포구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지명은 그대로 남아 역사를 전하고 있다.
도대불을 지났다, 도대불은 바다로 나간 배들의 밤길을 안전하게 밝혀주는 제주도의 민간 등대이다. 제주도 해안가 마을의 포구에 하나씩 있었는데 그 모양이 원뿔 모양, 사다리꼴 모양 등 저마다 달랐다고 한다. 김녕 도대불의 등불은 해질 무렵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이 켜면 아침에 들어오는 어부들이 껐다고 한다. 등불의 연료로는 생선 기름이나 송진을 쓰다가 나중에는 석유를 이용했고 1972년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길가의 설명에서)
김녕 서포구로 왔다, 바다가 요동치고 있다. 겨울 파도가 거세다.
● 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을 말한다. 봉수대와는 기능 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 지역에 설치되었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여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신호를 보냈다. 별방진에 소속되어 있는 좌가연대는 북제주군 구좌읍 한동리 북쪽에 있는 옛날에 좌가장이라고 불리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남·서쪽 면은 무너졌으나 연대의 윤곽은 뚜렷하며, 높이는 1.8∼2.2m 정도가 남아있다. (문화재 앞 설명에서,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