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풍루를 찾기 위하여 아침 일찍 채비하여 먼 길을 나섰다. 아침부터 비가 내려 무주의 산야가 젖어 있었다. 버스는 한풍루가 있는 지남공원 앞까지 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무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일봉 선생의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선생에게 목례(目禮)하고 지나갔다. 빗속의 지남공원을 걸었다. 공원이 넓게 잘 정비되어 바라보기 좋았다. 내리는 비로 인하여 조심해 걸었다.

한풍루 앞에 섰다. 한풍루는 보물로 ‘동국여지승람’에 객관(客館) 옆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관아에 딸린 건물이라 한다. 원래 관아가 자리하였던 남대천(南大川) 가에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무주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전주의 한벽당(寒碧堂), 남원의 광한루(廣寒樓)와 더불어 호남의 삼한(三寒)으로 꼽히는 명승이었다고 한다. 한풍루의 현판을 한석봉 선생이 썼다고 하니 다시 올려보았다. 처마에는 빗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한풍루 앞에 무주 시내가 내려 보였다. 무주는 산골인데 비로 인하여 마을과 산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내리는 비를 피해 다시 한풍루 밑으로 들어왔다. 뒤쪽은 넓은 공터이다. 공터 저편에는 전일봉 선생의 묘소가 보였다.

한풍루 주위에는 많은 비석이 있다, 6.25 참전 기념비와 국민방위군 무주수복기념비가 무주사람들도 국토수호에 헌신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옆에는 무주 출신의 이우기 시인(詩人)의 시비(詩碑) ‘내 고향 무주’가 있다. 무주를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졌다. 무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정겹게 표현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서정적으로 그려 내었다.

북고사(北固寺)에 참꽃 필 때 뻐꾹새 소리 봄이 익어
벙구들 산들바람에 산꿩이 알을 품네.
수리재 연분홍 꽃길 안개 속에 춤을 춘다.
강선대(降仙臺)에 물고기 놀고 칠리대(七里臺) 너머 황새 나네.
옥(玉) 같은 남대천(南大川)에 몸담고 청산(靑山) 보면
천만년(千萬年) 면면(綿綿)한 고장 정겨웁고 상서(祥瑞)롭다.
...(중략)

● 지남공원(芝南公園)은 인접한 무주 등나무 운동장과 더불어 군민들의 예술, 문화, 체육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지남공원 내에 있는 대표적인 건물은 한풍루(寒風樓)이며, 지남공원 주변은 무주 등나무 운동장, 무주문화원, 반딧불 체육관, 수달 수영장, 반딧골 전통 공예 문화촌, 청소년 수련관, 국민 체육 센터, 형설지공 도서관 등이 모여 있어 무주군의 문화, 예술, 체육의 중심지이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전일봉(全日奉, 1896-?)은 무주군 적상면 출신으로 3·1 운동 당시 동지들을 규합하여 거사 계획을 논의하고 독립 만세운동을 하였고 일경에 체포되어 실형을 받았다. (향토문화전자대전)
● 동국여지승람은 각 도의 지리, 풍속, 인물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우리나라의 지리서이다. 조선 성종 12년(1481)에 50권을 완성하였고, 성종 16년과 연산군 5년에 수정작업을 하였다. 이후 중종 25년(1530)에는 이행, 윤은보 등이 내용을 보완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만들었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6·25전쟁 때 정부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타개하기 위하여 약 50만 명의 장정들을 51개 교육연대로 편성하여 분산 수용하였다. 그러나 병력수송과 훈련을 하는 데 필요한 예산이 확보되지 못하고 행정적인 조처도 미흡하였으며, 지휘통솔력이 부족해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이들이 1·4후퇴 때 부산까지 걸어서 후퇴하면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려 90,000여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1951년 부산에서 열린 국회에서 대책을 추궁하자 36세 이상인 장병들은 귀향하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국민방위군 간부들이 인원을 조작하여 거액의 금품을 착복하고 양곡을 부정처분한 것이 드러난 국민방위군사건이 발생하여 부통령 이시영(李始榮)과 국방부 장관 신성모(申性模)가 사임하는 등 정국이 어지러웠다. 결국, 국회의 결의에 따라 5월 12일에 해체되었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한석봉(韓濩, 1543-1605)은 조선 중기의 김정희(金正喜)와 쌍벽을 이루는 서예가이며 해(楷) ·행(行) ·초(草) 등 각 서체에 모두 능했다고 한다. ‘서경덕신도비’, ‘행주승전비’ 등 비문이 주로 남아 있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무주 출신의 시인 이우기(李禹基)는 고향에 대한 아름다움과 정, 그리움 등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시집으로 ‘눈물겹게 고마운 세상’이 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북고사(北固寺)는 무주군 무주읍 향로산 중턱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 개국을 위해 새 도읍지를 찾던 무학대사는 천혜의 절경 무주(茂州)를 보고 천하의 복지(福地)임에 감탄하여 그곳의 절에 탑을 세우고 절 이름을 ‘북고(北固)’로 개칭하였다.
● 강선대는 단양군 적성면 성곡리의 가은암산 아래에 있는 큰 바위이다.
● 칠리대는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상리 마을 동쪽 남대천(南大川) 주변에 있는 바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