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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팔부자거리


수원 팔부자거리를 걸었다. 북수동 성당 주위의 지금은 사라진 거리이다. 수원화성이 완공되고 정조대왕은 전국 팔도를 대표하는 부자들을 한곳에 모여 집을 짓게 하였다. 여덟 채색전의 기와집을 중심으로 상권과 마을이 형성되어 장안문에서 행궁 앞 주변으로 비단을 파는 입(立色廛), 해산물을 파는 어물전(魚物廛), 소금을 파는 염전(鹽廛), 유기를 파는 유철전(鍮鐵廛) 등 전문적인 시전(市廛)이 들어서면서 수원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팔부자거리는 일제강점기와 함께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조선 후기의 훈련도감 중영(中營)이 일본군의 수비대로 바뀌고 서양문물이 유입되면서 거리의 상권은 힘을 잃어갔다. 국가의 몰락을 비껴갈 수 없었다. 팔부자집의 한곳이 선교사에게 팔리며 북수동 성당이 되었으며 성당 안의 소화초등학교는 세월이 흘러 뽈리화랑이 되었다.

팔부자거리는 근대를 지나는 동안 이름만 남아 현대를 맞았다, 1980년대에 문구점이 생겨 팔부자 문구거리가 되었으나 이 또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몇 개 남지 않았고 길거리에 보이는 동광과학문구라는 상호가 그 명성을 기억할 따름이다. 또한, 이곳에는 우시장이 있었다. 그러나 우시장도 사라지고 낡은 건물만이 나를 마주한다. 골목길에 보이는 수원 청과물 시장도 손님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시장도 권선동에 새로운 청과물 시장이 들어서면서 생명력을 잃어갔다.

걷다가 만나는 오래된 건물을 바라보았다. 쇠락하는 것은 아쉽다. 세월은 무심하게 흐른다.


● 북수동 성당은 천주교 수원교구에 소속되어 있는 성당으로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르 메르 신부(神父)가 초대 신부였다. 성당은 1932년에 건립하였는데 수원 최초의 고딕 양식 건물이었다. 1934년에 성당 옆에 세워진 소화학술강습회는 나중에 소화초등학교가 되었으며 현재는 수원 광교 쪽으로 이전하였다. 1979년에 옛 성당을 철거하고 현재의 성당을 건립하였다. (마발로 쓴 여행기 1, 김형기)

● 정조의 1789년 화성 건립과 함께 세워진 수원 우시장은 한때 전국 3대 쇠전으로 일컬어질 만큼 장세가 컸지만, 현대에 도시 개발로 인해 쇠퇴하다 1998년 결국 폐지되었다. (수원우시장, 경기수원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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