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팔달문


창룡문에서 성곽을 걸어서 팔달문(八達門)으로 왔다. 성곽이 끊어져 계단을 따라 내려오니 팔달문 시장이다. 나오는 길에 백선행 선생 동상이 있다. 어려운 시대에 수원과 인근 지역 사람들을 구휼(救恤)한 분으로 잠시 예를 취하고 다시 길을 걸었다.


팔달문은 도로 중앙에 있어서 문 주위로 차가 돌아나가는 곳으로 완전히 섬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오래전에 팔달문 주변 교동이나 팔달로 일대를 남문이라고 하였다. 요즈음 팔달문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늘어나 원래의 이름을 되찾고 있다.


팔달문은 수원화성의 남문으로  보물  제402호라고 한다. 조선의 22대 임금인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이장할 때 다른 수원 화성 성곽과 함께 건립되었다. 수원의  팔달산에서 이름을 따 왔다. 문의 바깥쪽에는 문을 보호하고 방비를 단단히 하기 위해 반원 모양으로 옹성을 쌓았다. 세월이 흘러 파손되었으나 1975년 복원 공사 때 고증하여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문의 좌우로 성벽이 연결되어 있어 남공심돈과 남암문, 적대가 있었지만, 도로를 만들면서 헐어버려 지금은 성문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성곽을 연결하여 완전 복원을 하려면 남문시장 일부를 헐어야 하여 성곽의 복원을 위해 시장주민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팔달문 주변은 수원의 대표적인 구시가지로 수원의 중심지였으나 점차 수원역에 밀리게 되었다. 하지만 근처에 시장이 많아 수원 각지에서 장을 보러 많이 오며 나도 자주 찾고 있다. 팔달문 시장의 북쪽 골목은 유명한 치킨거리가 있어서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주변에 병원과  약국이 많이 있었으나 점차 쇠락하게 되었다. 약국은 아직 남아 있어 주말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에 있던 중앙 극장은 수원의 대표적인 극장이었으나 팔달문이 쇠퇴함에 따라 문을 닫았다. 하지만 얼마 전에 메가박스가 생겨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차량이 지나치는 가운데 우뚝 서 있는 팔달문을 바라보았다. 팔달문이 잘 정비되어 성곽과 이어지기를 바라며 다시 길을 걸었다.


● 백선행(白善行) 선생은 수원 출신의 여성 사회사업가로 16세에 남편과 사별한 후 평생 수절하며 근검절약으로 큰 재산을 모았다. 평양에 3층 공회당을 건립하고 평양 숭현학교(崇賢學校)에 토지를 기부하는 등 다양한 기부 활동을 하였다. 또한, 수원과 인근 사람들의 구휼(救恤)에 헌신적이었다. 당시 총독부에서 주는 표창은 거절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성곽 좌우에 설치하는 치(雉)를 체성(体城)에 설치하는 치와 특별히 구분하여 적대(敵臺)라고 불렀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로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공격시설이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국내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인 수지로  (2) 2023.10.05
광교 신대호수  (0) 2023.10.02
안산 자락길  (0) 2023.09.21
운학산 현등사길  (0) 2023.09.20
빛가람 전망대  (0) 2023.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