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시장에서 나와 청풍문화재단지로 왔다. 청풍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문물이 번성했던 곳으로 많은 문화 유적을 갖고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청풍면 마을들이 문화재와 함께 수몰될 위기에 있었다. 충청북도청에서는 1983년부터 3년간 수몰 지역의 문화재를 원형대로 현재 위치에 이전하여 단지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문화재 단지에 들어가는 입구인 청풍 팔영루를 사진에 담고 안으로 들어섰다. 팔영루 출입문 천장에 호랑이 그림이 있었다. 해설사의 설명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구전에 의하면 청풍의 재해를 막기 위하여 그려졌다고 한다,

들어와서 몇 개의 한옥 고가(古家)들을 만났다. 그중에서 제천 후산리 고가에 들어섰다. 이 가옥은 전통적인 민가로 양반가옥으로 보인다, 높은 마루와 낮은 방의 바닥이 돋보였다. 이리저리 들러보고 건물을 바라보거나 마루에 앉아 사립문 바깥도 내다보았다. 마당에는 투호가 있어 던져보았다. 그 옆의 마당에서 만나는 글귀가 아름답다.

긍정적으로 보면
인생은 늘 행복해요
행복은 준비하는게 아니에요
지금 그냥 행복하세요. (법륜)
돌아 나오니 호랑이와 싸우는 김중명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를 바라보며 석조여래입상으로 왔다. 입상의 코가 많이 상한 것은 아들을 낳기 위한 여인네의 손길이 많이 닿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를 지나 금병헌(錦屛軒)에 이르렀다. 관아의 건물인 금병헌(錦屛軒)에서는 죄인에게 벌을 주는 단호한 부사의 보습을 볼 수 있었다. 금병헌(錦屛軒) 뒤의 아름다운 모습의 청풍호는 장관이었다.
옆의 한벽루(寒碧樓)로 왔다. 한벽루는 관아의 부속 복조 건물로 연회장소였다고 한다. 청풍호를 품은 한벽루를 사진에 담았다.
길을 걸으니 수많은 선정비(善政碑)가 보였다. 선정비의 인물 중에 진심으로 백성을 위한 관료가 얼마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일부 사료에서는 5%가 넘지 않는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심지어는 먼저 선정비를 세워줄 테니 백성들을 잘 돌보아달라는 협상도 하였다고 하니 불행한 시절이었다.

돌아 나오는 길에 고인돌도 보았다. 고인돌은 선사시대의 거석문화 일종으로 지상이니 지하의 무덤방 위에 괴었던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무덤 양식이다. 한반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곳 제천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청풍문화재단지의 하늘은 맑았으나 날씨가 추워 조금 따뜻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 제천 청풍 팔영루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조선 시대에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이었던 누문(樓門)이다. 아래는 문이고 위에는 누각의 형태로 되어있다. 고종 때의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하여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충주댐 건설로 1983년 지금 위치로 옮겨서 복원하였다. (단지 설명 브로셔에서)
● 제천 후산리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이 집은 본래 청풍면 후산리 105번지에 있었던 민가였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조선 말기에 지어진 ㄱ자형의 팔작 기와집이다. 대청마루를 기준으로 하여 동남을 향하고 있다. (단지 설명 브로셔에서)
● 법륜스님(1953-)은 사회운동가, 구호활동가, 환경운동가, 통일전문가로 불교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스님이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청풍김씨 김중명은 인조때 무과에 올라 선전관에 발탁되었다, 부친산소 성묫길에 큰 범을 만나게 되었다. 따라온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나가지 못하자 중명이 고함을 지르며 나아가 발로 호랑이를 차서 죽여버리니 그 용맹에 탄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매산집)
●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은 보물로 높이가 341cm로 통일신라 말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불상의 얼굴 모양은 풍만하고 자비로운 상으로 두툼한 양 볼에 인중이 뚜렷하고 두 귀는 양어깨까지 드리워졌다.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으며, 왼손은 땅을 가리키고 있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지에서 1983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단지 설명 브로셔에서)
● 제천 청풍 금병헌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청풍부의 청사로 쓰였던 동헌 건물이다. 본래 청풍면 읍리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일명 명월정이라고도 하며, 내부에는 ‘청풍관’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단지 설명 브로셔에서)
● 제천 청풍 한벽루는 보물로 고려 충숙왕 4년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다. 1972년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다. (단지 설명 브로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