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문을 통하여 창덕궁에서 창경궁(昌慶宮)으로 왔다. 어렸을 적 창경궁에서 멀지 않은 학교에 다닌 나는 소풍으로 창경궁에 왔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호랑이와 사자를 볼 수 있었던 곳으로 인기가 많았었는데 알고 보니 일제의 의도가 숨어있었다니 슬픈 역사였다,


일제강점기 때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창경궁 전각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개원하였다. 위로가 아닌 궁궐이 갖는 왕권과 왕실의 상징성을 격하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현재는 식물원만 남아 사계절 내내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창경궁 내 대온실(大溫室)은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 온실로 근대건축의 새로운 유형인 철과 유리가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건축되었다.

창경궁은 성종 13년 창덕궁의 수리를 논하는 자리에서 대비전의 세 어른인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폐허처럼 남아 있던 수강궁 수리를 명하면서 만들어졌다.
창경궁을 들어와 자경전 터를 지나 길을 걸으니 아래로 왕실의 건물들이 보여 계단으로 내려왔다. 왕과 왕비의 침전 겸 연회용 건물인 통명전을 보고 왕비의 생활 공간인 양화당(養和堂)도 구경하였다. 걸으며 고즈넉한 건물에서 사진도 찍었다. 또한,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를 위하여 지은 건물인 경춘전도 보았다.
중종이 돌아가셨다는 환경전과 순조가 태어났다고 하는 집복헌을 지나 명정전(明政殿)에 들어섰다. 커다란 건물 명정전은 현존하는 궁궐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되었고 다른 궁(宮)의 정전(正殿)은 남향(南向)이지만 이곳은 동향(東向)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고 광해군 때 재건되었다고 한다. 이를 지나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弘化門)까지 왔다.
홍화문을 사진에 담고 다시 되돌아 춘당지로 갔다. 춘당지(春塘池)는 원래 조그마한 연못이었으나 1909년 일제에 의해서 임금이 직접 밭을 일구고 농사의 풍·흉을 예측하던 곳인 내농포(內農圃)가 헐리면서 지금의 호리병 모양이 되었다.
춘당지 저편에 창경궁 식물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대온실(大溫室)이 있다. 어린 시절 소풍으로 왔던 보았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식물원을 지나 북촌으로 가기 위하여 함양문을 통해 창경궁을 걸어 나왔다.
●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 尹氏, 1418-1483)는 조선 세조의 왕비이다. 1469년부터 1476년까지 손자 성종 대신 섭정을 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소혜왕후 한씨(昭惠王后 韓氏, 1437- 1504)는 인수대비(仁粹大妃)라고도 한다. 조선 세조의 아들인 의경 세자의 세자빈이자 추존 왕비이며, 성종의 모후이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 韓氏, 1445- 1499)는 조선 예종의 계비로 성종 즉위 초 그와 성종의 생모 소혜왕후와의 서열을 놓고 갈등이 있었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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