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에서 나와 북촌(北村)을 걸었다. 북촌길은 잘 꾸며져 깨끗하고 걷기에 좋았다. 삼삼오오 지나치는 사람들은 한복(韓服)을 입고 지나갔다. 내국인보다 외국 사람들이 한복에 더 열광하는 듯하다. 한복을 입고 지나는 사람들이 거의 외국인으로 보였다.

길을 걸어 북촌 가회동에 있는 백인제 가옥(家屋)으로 왔다. 가옥은 아름다운 북촌 거리가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근대 한옥의 양식을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일제강점기 한옥이라고 한다. 가옥 앞에서 가옥에 대한 설명을 읽고 가옥의 정문인 대문간채로 올라갔다.


대문간채는 백인제 가옥의 입구로서 솟을대문과 하인들이 거주했던 행랑이 있다. 솟을대문은 가마를 타는 양반들의 출입을 쉽게 하고 가문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전통한옥의 격조를 담고 있다고 한다. 문이 열려 있어 행랑을 들여다보았다. 바로 앞에 중문간채는 벽돌을 사용하여 화재 예방에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화재에 취약한 백인제 가옥의 단점을 보완해주었다.
중문간채를 지나 들어와서 바라본 건물은 고즈넉하다. 바로 앞의 사랑채는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공간이었고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아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사랑채에 앉아서 가옥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동영상을 보았다.


사랑채에서 나와 안채를 바라보았다. 안채는 안주인과 가족들의 생활을 위한 공간이다. 특이하게 서양식 문을 설치하여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하고 독립적 공간을 확보하였고 전통한옥에 근대적 생활방식을 반영하였다고 한다. 또한, 전통양식인 온돌을 이용하여 난방하였다고 하니 지혜로운 일이었다.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안채의 뒤쪽을 걸었다. 오른쪽의 언덕 위에 별당채가 있다. 별당채는 바깥주인의 개인 휴식공간으로 북촌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 북촌 마을을 바라보는 장소였다고 한다.
문득 집어 든 가옥 활동지에는 건물을 최초로 만든 한상룡, 가옥을 구매한 최선익의 이야기와 인제 백병원의 창립자인 백인제 박사와 그의 부인 최경진 여사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제 가옥은 일반에게 공개되어 그 시절의 주거 환경을 알 수 있는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백인제 가옥을 통해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역사적 흐름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 흔적을 통하여 역사적인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가을이 되었지만, 햇살이 강했다. 쏟아지는 햇살을 손으로 가리며 길을 나섰다.
● 북촌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있는 백인제 가옥은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에 의해 1913년 건립되었다. 주변 가옥 12채를 사들여 900여 평의 큰 대지에 압록강 흑송을 자재로 이용하여 건축하였다고 한다. 사랑채와 안채가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당시의 한옥에서는 그 예가 거의 없는 2층 공간도 지었다. 본채 전체영역에 유리문을 달았고 사랑채 앞으로 넓은 정원을 조성한 것도 한옥에 적용된 근대적인 요소이다. 사랑채 뒤쪽으로 난 아름다운 오솔길을 걸으며 휴식공간인 별당채에 이른다. 본 가옥의 마지막 소유주로서 1944년부터 거주하였던 외과의 백인제 박사의 이름을 따서 문화재 명칭이 부여되었다. (가옥 앞 설명에서)
● 한상룡(1880-1947)은 친일 자본가로 백인제 가옥을 지은 사람이다. 한성은행 은행장으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가옥을 내놓았다. (가옥 활동지에서)
● 최선익(1905-?)은 개성 출신의 언론인으로 1935년 한성은행으로부터 백인제 가옥을 구매하였다. 이때 구조를 많이 바꾸었다. (가옥 활동지에서)
● 백인제(1898-?)는 인제대학교 백병원 창립자로 당대 최고의 외과 의사였다. 1944년에 이 집을 구매하여 자주 친목 모임을 하였다.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가옥 활동지에서)
● 최경진(1908-2011)은 백인제의 부인으로 백인제의 납북 이후 가옥을 지켜온 사람이다. (가옥 활동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