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별장에서 나와 멀지 않은 곳의 이기붕 별장으로 왔다. 걸어가는 길의 송림은 아름답다. 단단한 돌로 만들어진 별장 건물은 지금도 튼튼해 보였다.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건축되어 사용된 건물로 해방 이후 북한 공산당의 간부 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휴전 이후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 여사가 개인 별장으로 사용하다가 폐쇄되었으며 1999년 역사안보전시관으로 개수하여 관람객에게 전시하고 있다.
별장은 별로 크지 않다. 타자기와 라디오가 있는 거실이 있고 방에는 침대가 놓여있는 단촐한 공간이다. 침실 벽에 이기붕의 정치활동 이야기가 있다. 이기붕은 미국 유학 시절 이승만과의 인연으로 귀국 후 2대 대통령 비서실장에 발탁되어 권력의 핵심이 되었다, 이후 서울시장과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였으며, 1953년 자유당 총무부장이 되어 정치깡패들을 이용해 각종 정치집회를 조직하였다. 1954년부터 자유당 전성시대를 열어 권력의 2인 자가 되어 독주하였다. (별장 전시실 벽에서)
이기붕 일가는 권총 자살로 비극적인 생을 맞이하였다. 민주적 권력을 소유하지 않은 자의 말로(末路)는 비참하였다.

● 이기붕(李起鵬, 1896-1960)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3-4대 서울특별시장, 제3대 국방부 장관, 제3·4대 상반기 국회 민의원 의장을 역임했다. 이승만 정부의 2인 자로 널리 알려있지만, 부통령 직책을 역임한 적은 없다. 3.15 부정선거 당시 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뿐이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박마리아(朴瑪利亞, 1906-1960)는 자유당의 2인 자였던 이기붕(李起鵬)의 부인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엘리트 지식인이었으나 돈과 권력과 출세와 명예에 대한 욕심이 많아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고서라도 출세하기 위해 온갖 패악을 저질렀다. 그 결과 자기 자신과 가족들마저 파멸시켰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