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박경리 문학의 집


구룡사에서 나와 원주시 단구동의 ‘박경리 문학(文學)의 집’에 들어섰다. 문학의 집에서 만난 봄빛이 아름답다.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산다는 것)


문학관 앞에서 만난 선생의 시는 이제 초로(初老)의 나이가 되어 울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선 토지(土地) 문학관에서 선생의 글귀를 만났다.

- 이제부터 나는 써야 할 작품이 있다.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의 것을 모두 습작이라 한다. (Q씨에게)

문학관에서 만난 《토지》 이야기. 토지를 통하여 바라본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는 우리 민족의 수난 시대였다. (문학관의 설명에서)

제1부의 무대는 경남 하동 평사리이다. 넓은 들판과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 마을에서 지주인 최 참판과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펼쳐진다. 별당 아씨와 구천의 도주, 최치수의 살해, 조준구의 횡포로 민란이 일어나고, 서희 일행은 조준구의 횡포를 피해 만주로 이주한다.

제2부는 동아시아로 무대가 확장된다. 서희는 용정촌에서 큰 부를 축적해 조준구에게 뺏긴 재산을 되찾으려 하고 용이 일행은 일터를 찾아 퉁포슬, 연추, 연해주 등으로 이동한다. 밀정 김두수와 독립지사들이 추격하는 간도는 항일과 친일, 매국과 애국이 투쟁하는 대결 공간이다.

제3부의 주 무대는 1930년대 서울이다. 서울의 거리는 근대화된 풍경으로 채워지고 근대문물을 익힌 신지식인들은 이러한 서울에서 끝없이 고민하고 방황한다. 근대적 각성을 바탕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신여성의 모습도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제4, 5부에서는 지리산은 생존을 도모하고 해방을 염원하는 공간이다, 전쟁을 피해 사람들은 지리산으로 모여든다. 소지갑, 해도사, 뭉치는 독립을 위한 투쟁을 모색하고 길상은 도솔암에서 관음탱화를 조성함으로써 고통과 절망에 빠진 민족을 구원하기를 염원한다.


문학관에서 나오는 길, ‘느린 우체통’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 벗에게, 가족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보낼 수 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즐거움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어여쁘다. 이를 지나 옆에 있는 박경리 선생의 옛집으로 향(向)하였다.
물은 어떠한 불도 다 꺼 버리고
불은 어떠한 물도 다 말려 버린다
절대적 이 상극의 틈새에서
절대적인 이 상극으로 말미암아
생명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절묘한 질서인가 ...(중략)(모순)

이 집은 박경리 선생이 1980년부터 거주하여 그의 대표작 《토지》 4, 5부를 집필, 완간한 공간이다. 치열한 창작활동과 텃밭에서 온갖 생명을 기르며 몸소 생명 사상을 실천한 곳이기도 하다. 정원은 연못 등 일부 시설을 도입하고, 텃밭과 정원수는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였으며 옛집의 관리에 필요한 부분만 보수하였다. (길가의 설명에서)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횡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국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중략)(옛날의 그 집)


이 집에서 오랜 시간을 인내하며 글을 쓰는 선생의 모습이 실루엣이 되어 느껴졌다. 옛집의 벽에 선생의 취미랄 수 있는 바느질에 대한 시가 있다.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짜투리 시간
특히 잠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중략)(바느질)

박경리 선생의 옛집을 돌아보았다. 옛집의 내부는 복원 공간과 전시실 활용 공간을 구분하여 작가로서 또한 자연인으로서의 박경리 선생의 삶과 문학을 오롯이 드러내는 공간이다. 2층은 선생의 소망대로 세미나나 워크숍을 할 수 있는 문인들의 토지 문화 사랑방이다. (집 앞의 설명에서)

박경리 선생은 한국 문학사에 기념비적인 소설 《토지》와 다양한 장르의 저작을 남겼다. 그의 작품 속에는 수많은 생명에 대한 연민과 고통이 내재(內在)되어 있으며 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독자(讀者)에게 말을 건다.
.
《토지》가 끝났을 때 나는 성취감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다. 지친 때문이라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이제 토지는 영영 떠나 버렸구나, 일종의 상실감이었다. (중략) 이곳은 15년간 자유를 얻기 위한, 내 심정으로는 격전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아픔 58쪽)

● 소설가 박경리(朴景利, 1926-2008)는 경남 통영 출신으로 본명은 박금이(朴今伊)이다. 대표작 《토지》 외, 《김약국의 딸들》, 《불신 시대》 등 많은 작품이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편 김행도는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간 뒤 납북되었다. 1955년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이 현대문학에 발표되면서 작가로서 활동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그래도 존재해 있다는 것은 아름답고 경이롭다.” 젊은 날의 박경리가 써 보낸 내밀한 편지들이며, 삶과 문학에 대한, 뜨겁고 순수한 고백한 산문서이다. (예스24)

● 선생은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5년간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소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1979년과 1987년에 각각 한국방송공사에서, 2004년에 SBS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1980년부터 1994년까지 원주시 옛집에서 《토지》를 지은 일을 기념하기 위해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토지문학공원이 조성되었고,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에 있는 토지 문화관에서 집필 생활을 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답다. 그래서 고통까지 껴안는 것인지 모른다.” 살아 있음의 고통, 그 안에 숨어 있는 찬란함, 병든 시대를 향한 연민의 기록이 있는 박경리 작가의 산문집이다. (교보문고)

'국내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일성 별장  (0) 2026.05.06
금강산 건봉사  (1) 2026.05.04
원주 구룡사  (0) 2026.04.29
명나라 궁녀 굴씨 묘  (1) 2026.04.27
고양 신원동 덕명교비  (0) 2026.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