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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명나라 궁녀 굴씨 묘


고양시의 한쪽 산자락에 명나라 궁녀(宮女)의 묘(墓)가 있다. 덕명교비(德明橋碑)를 나와 명나라 궁녀였던 굴씨(屈氏)의 묘로 왔다. 궁녀의 이름은 남아있지 않고 굴씨(屈氏)라는 성(性)만 남아 이역만리 타국에서 잠들어 있다. 굴씨는 병자호란으로 심양(瀋陽)에 볼모로 간 소현세자를 모신 궁녀였다고 한다.


병자호란(丙子胡亂) 시기의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명나라의 몰락과 흥기(興起)한 청나라, 그리고 둘 사이에 끼어 있는 조선의 형세였다. 1636년 12월 청나라는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침공했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는 47일간의 항쟁 끝에 삼전도에서 항복하였다.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 씨, 봉림대군 등 많은 사람이 청의 도읍인 심양(瀋陽)으로 끌려갔으며 우리는 이를 ‘삼전도의 굴욕’이라 부른다.


굴씨는 명나라 숭정제의 후궁으로 심양(瀋陽)에 볼모로 온 소현세자를 모셨다. 이후, 소현세자와 함께 입국하였지만, 소현세자는 귀국하여 의문의 병사(病死)를 하였다. 하지만, 굴씨는 청으로 돌아가지 않고 조선에 남아 궁인(宮人)의 삶을 살았으며, 중국어와 예법을 가르치며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굴씨는 죽기 전 유지를 남겼는데, “고향으로 가는 길에 묻어 달라”라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유언 때문인지, 굴씨의 묘는 소현세자 종중(宗中)인 중국으로 가는 길인 대자산 자락에 있다.

묘역의 외형은 크게 봉분과 상석만 있는 간소한 형태로, 굴씨 묘임을 알리는 묘표와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묘표의 앞면에는 ‘소현세자청국심관시녀굴씨지묘(昭顯世子淸國瀋館侍女屈氏之墓)’가 새겨져 있다.

하늘이 맑다. 묘소 주위의 나무에는 새순이 돋고 있었다. 이역만리에서 생을 마친 이방인을 위하여 예(豫)를 다하였다. 그녀의 삶이 안타깝기만 하다.

●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1645)는 조선의 왕세자이며 인조의 장남이며 효종의 형이다. 병자호란으로 8년간 청나라에서 볼모로 생활하였다. 북경에서 천주교 선교사 아담 샬을 만나 서구 문명을 접하였으며 포로로 잡혀간 조선 사람들을 모아 둔전을 경작해 곡식을 쌓고 무역하는 등 실용주의 노선을 택하게 되었다. 귀국 후 아버지 인조와 대립, 갈등하던 중 독살로 추정되는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병자호란 이후 명나라의 사정도 좋지 않았다. 산해관을 기점으로 청과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명나라는 내부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결국, 이자성의 농민반란으로 1644년 4월 북경이 함락되며 명나라는 멸망하였다. 명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는 자결하고,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가 청에 투항하여 명은 청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되었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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