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돌고개를 나와 김지남 묘 및 비갈(金指南 墓 및 碑碣)로 왔다. 이곳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에 있는, 조선조 후기의 외교관 역관인 김지남의 묘소이다. 그의 비석에 백두산정계비를 세우는 공(功)이 적혀 있다. 묘소는 고양시의 향토 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묘비의 종류는 비석(碑石)과 갈석(碣石)이 있다. 비석은 사적(事蹟)을 기념하기 위하여 글을 새겨 세우는 것이고, 갈석은 가첨석(加檐石)을 얹지 않고 머리를 둥글게 만든 비석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곳 우봉 김(金) 씨 묘역에는 수십 기의 묘소가 있으며, 묘역의 상단에는 선대를 모시고 아래로는 후대의 묘소를 조성(助成)하였다. 김지남의 묘소에 세워진 비갈은 사면(四面)에 글이 새겨진 금석문(金石文)으로 비문 뒷면에 백두산정계비를 세우게 된 과정과 의미를 기록하고 있다.
김지남은 통역관으로 중국에서 염초 제조법을 익힌 당대의 교양인이었다, 당시에 통역관으로 일하였으며, 독서를 많이 하여 지식을 쌓아 사회발전에 기여(寄與)하였다.
● 김지남(金指南, 1654-1718)은 조선 후기의 역관(譯官)으로 만 18세인 1672년에 역과에 급제한 후 일본과 청나라를 오가며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청나라로부터 염초 제조법을 알아내어 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을 지었고 1712년(숙종 38)에는 청나라와 국경을 확정하여 간도 및 토문강 동쪽이 조선의 영토로 하는데 기여하고,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를 세우게 하였다. 이외에도, 김지남은 경문과 함께 중국, 일본과의 외교사를 정리한 통문관지(通文館志)를 편찬하여 외교사(外交史)에 업적을 남겼다. 김지남을 역관으로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벼슬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묘비 앞 설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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