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삼월(春三月)의 아침은 아직 한기(寒氣)가 가시지 않았다. 새벽에 두툼하게 옷을 입고 길을 나섰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도동에 있는 숫돌고개에 왔다. 숫돌고개는 오금동에서 삼송동 쪽으로 넘어가는 통일로에 있는 고개이다. 이 산등성이에서 칼을 가는 숫돌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하며 여석현(礪石峴)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이제는 숫돌고개는 넓은 도로가 만들어져 그 옛날의 좁은 길이 아니다. 이곳에 오래전 임진왜란(壬辰倭亂)의 이야기가 있다. 일본군과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벽제관 전투(戰鬪)가 있었다. 전투의 이름과 달리 벽제동에 있는 벽제관이 아닌, 그보다 남쪽인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 일대의 여석현 주위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임진왜란 중인 1593년 2월 27일에 조명연합군과 일본군이 이곳 여석현(礪石峴)에서 벽제관 전투를 벌였다. 이여송이 이끄는 조명연합군은 이쓰다 미쓰나리를 중심으로 한 일본군과 격돌하였다. 전투는 평양을 탈환한 조명연합군이 일본군에게 참패를 당해 전쟁이 장기전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군의 북상이 다소 꺾였으나 연합군의 남하도 쉽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조명연합군은 이여송의 심복 이유승 등이 전사했다.
이제는 오래전 전투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역사로만 남아 후세에 알리고 있다. 여석현(礪石峴)은 아침이어서 그런지 지나치는 차량이 보이지 않고 한적하다. 길가의 목련만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 이여송(李如松, 1549-1598)은 중국 명나라 말기의 장군으로 임진왜란 시기에 명나라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돕기 위해 파병되어 평양성 전투 등을 지휘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1560-1600)는 일본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무장 겸 다이묘이다. 도요토미 정권하에서 오봉행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593년에 벽제관 전투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조명연합군을 격파하였지만, 여세를 몰고 벌어진 행주산성 전투에서는 조선군에게 패배하였다. 이 전투에서 미쓰나리는 조선군이 쏜 승자총통에 맞아 부상을 당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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