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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서호 잔디광장


봄빛이 완연하여 벚꽃이 날리는 날에 수원 서호잔디광장에 왔다. 서호잔디광장에서 바라본 서호는 아름답다. 서호는 수원화성의 서쪽에 있어서 서호(西湖)라는 이름이 있지만 축만제(祝萬堤)라는 전통적인 이름도 가지고 있다. 광장에 가족들과 나들이 나온 이들이 한가로이 호숫가를 거닐고 있다.


길을 걸어 서호 한쪽의 항미정(杭眉)으로 향했다. 항미정은 아름답다. 항미정을 사진에 담고는 서호를 바라보았다. 서호 아래는 드넓은 평야에 잘 만들어진 논이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에 둔전(屯田)으로 사용되었던 논이라고 한다.


또한, 이곳 항미정에서 일제강점기에 수원의 젊은 학생들이 독립운동 결사체인 구국민단을 조직하고자 이곳에 모였다고 한다. 주위는 어두웠을 것이고 젊은 학생들은 눈빛만 초롱초롱 빛났을 것이다. 그들의 희생이 있어서 지금 수원이 빛나고 있다.

항미정을 나와 호숫가를 걸었다. 젊은이들이 웃으며 길을 지나갔다. 호수 건너에 농촌진흥청 건물과 아파트들이 호수에 반사되어 아름답다. 어쩜 이렇게 호수에 비친 하늘이 맑은지 호숫가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 축만제는 1799년 화성의 서쪽 여기산 아래 조성된 저수지이다, 정조는 만석거와 만년제의 3배 규모의 축만제를 이곳에 조성하였고 개간된 둔전에서 얻은 수익은 화성을 수리하는 비용으로 사용하였다. 축만제는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에서 화성 서쪽에 있어, 서호(西湖)라고도 불린다. 해방 후, 이곳은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과 농촌진흥청 설립으로 이어졌고 축만제는 세계관개시설물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길을 가다 본 설명에서)

● 항미정은 축만제에 있는 정자로 1831년 화성 유수였던 박기수(1774-1845) 가 현재의 자리에 건립하였다, 항미정이라는 이름은 중국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시구(詩句)에 항주(杭州)의 미목(眉目)과 같다고 읊은 데서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1908년 순종 황제가 기차를 타고 수원 능행을 하였을 때, 윤건릉 참배 후 서호 임시정거장에 도착하여 축만제 뚝방길을 지나 차를 마시며 잠시 쉬었던 정자이다. (항미정 앞의 설명에서)

● 수원 출신 학생이었던 박선태, 이득수는 1920년 임순남, 최문순, 이선경을 규합하여 구국민단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조선의 독립과 수감된 독립운동가의 가족을 구조할 것을 목표를 세워 활동하였으나 일제에 발각되어 옥고를 치루었다. (항미정 앞 설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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