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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금강산 건봉사


이른 아침부터 준비하여 우리나라 최북단 사찰(寺刹), 금강산(金剛山) 건봉사(乾鳳寺)에 왔다.

건봉사(乾鳳寺)는 신흥사, 백담사 등 9개의 말사(末寺)를 거느렸던 전국 4대 사찰 중의 한 곳으로 신라 법흥왕 때인 서기 520년대에 지어졌다. 부처님의 진신(眞身) 치아사리(齒牙舍利)와 무지개 모양의 능파교, 그 양쪽에 바라밀 모양의 돌기둥, 그리고 불이문이 천년이 넘은 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건봉사 브로셔에서)


사찰의 입구인 불이문 앞에서 건봉사에 대한 설명을 보았다. 금강산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가 시작되는 감로봉 동남쪽 자락에 자리한 절로 석가모니 치아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한때, 3,183칸에 달하는 대규모 사찰이었으나 한국 전쟁 때 불이문만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1994년부터 복원 사업을 시작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 승려들이 승병을 조직한 곳이자 일제강점기에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호국사찰이기도 하다. (절 앞의 설명에서)


건봉사 불이문(不二門)을 지난다. 불이(不二)란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하며 이곳을 통과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갈 수 있음을 상징한다. (절 앞의 설명에서) 불이문을 지나 바라본 건봉사는 새로운 세상이다.
건봉사 능파교(凌波橋) 옆으로 지나갔다. 건봉사 능파교는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는 홍교(虹橋)이다. 이를 지나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쓰여있는 건물에 다가섰다. 그 앞에는 ‘석가여래치상탑비’가 있다. 이 상탑비에 부처님의 진신 치아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상탑비를 바라보며 합장(合掌)하여 나도 같이 합장하였다.


길을 내려와 능파교를 지나 대웅전(大雄殿)으로 왔다. 원래, 진신사리가 모셔진 사찰은 적멸보궁이 있고 대웅전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진신사리의 도난 이후 대웅전이 지어지고 다시 회수되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대웅전을 돌아보았다. 대웅전 벽에는 삼신불 중 하나로 오랜 수행으로 무궁무진한 공덕을 쌓고 부처님이 된 보신불(報身佛)인 ‘노사나부처님’이 있다. 연화대(蓮花臺)의 단상에 앉아 결과 부좌(趺坐)를 하고 있으며 왼손은 무릎 위에 오른손은 가볍게 들고 있는 모습이다.


건봉사를 거닐었다. 언덕 위에 아름다운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1,500여 년 전 건봉사는 왕실의 원당으로 전국 최대의 사찰이었다. 소나무는 건봉사의 번성과 아픔을 이야기하듯 300여 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인 2명이 껴안아도 손이 닿지 않는다. 전쟁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소나무가 있어 고맙다.


● 건봉사에 봉안된 부처님의 진신 치아사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께서 선덕왕 5년(636)에 중국 오대산에 건너가 문수보살 전에 기도 끝에 얻은 진신사리 100과 중의 일부다. 지장율사는 643년에 귀국하여 이 사리를 5대 적멸보궁 (통도사, 월정사, 법흥사, 정암사, 볼정사)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통도사에 난입하여 금강계단에 모셔진 사리를 탈취해 갔던 것을 1605년에 사명대사가 사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되찾아왔다. 이후, 사명대사는 치아사리를 처음 의승군을 규합하여 인연이 있는 건봉사에 봉안하였다. (상탑비 앞 설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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