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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화진포 셔우드 홀 문화공간


이기붕 별장 멀지 않은 곳에 ‘셔우드 홀 문화공간’이 있다. 문화공간 앞에 셔우드 홀(Sherwood Hall, 1893-1991)의 상(像)이 나를 맞이하여 주었다.


문화공간에는 한국 최초의 결핵 요양원을 설립하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여 결핵 퇴치에 공헌한 셔우드 홀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전시물과 영상물로 담아놓았다. 그는 의료 선교를 위하여 이역만리 낯선 곳으로 왔다.

-조선의 해안이 보였다. 배가 조선의 땅에 가까워지자 나는 앞으로 내가 살아갈 조선을 각별한 관심으로 바라보았다.

셔우드 홀의 동반자(同伴者)였던 로제타 셔우드 홀의 이야기도 있다. 로제타 셔우드 홀의 가슴을 뛰게 한 메리 라이언의 한마디는 울림이 있다.

- 인류를 위해 봉사하려거든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에 가서 아무도 하려 하지 않은 일을 해라. (메리 라이언)

문화관에는 셔우드 홀의 가족 이야기도 있다. 1890년 로제타 셔우드 홀이 조선에 도착한 시기부터 1940년 셔우드 홀의 아들인 셔우드 홀과 며느리인 메리언 홀이 조선에서 떠나기까지, 홀 가족이 조선에서 보낸 시기는 혼란스러운 근현대 시기였다. 편견과 전쟁의 문턱, 척박한 땅에서 윌리엄 제임스 홀의 의료사업과 교육사업은 시작되었다. 윌리엄 제임스 홀은 청일전쟁으로 부상과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를 돌보던 중에 건강 악화로 1894년에 세상을 떠났다,

윌리엄 제임스 홀이 남긴 시는 우리에게 울림이 있다.
나의 세월은 마치 동화 같았습니다.
값진 황금 같은 순간들이었습니다.

문화공간 전시실에는 부인 로제타 셔우드 홀의 이야기는 고맙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도
가장 높은 곳의 사람에게 하듯
최선의 예의를 다해 치료하고 싶다.

로제타 셔우드 홀과 함께 한, 조선인 오봉래 이야기도 있다. 오봉래(?-1918)는 로제타 셔우드 홀이 개발한 한글 점자 교재로 교육을 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시각장애인이다. 조선의 헬렌켈러로 불리었다고 한다. 일본 동경맹학교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평양맹아학교에서 시각장애인을 가르쳤다.

셔우드 홀은 한국의 결핵 퇴치를 위해 힘썼다.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을 비롯한 가족 6명은 서울의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역(宣敎師墓域)에 잠들었다. 문화공간에서 만난 셔우드 홀의 유언(遺言)은 울림이 있다. 셔우드 홀은 조선과 영원히 함께한 선교사였다.
- 저는 여전히 한국을 사랑합니다. 제가 죽거든 미국이나 캐나다 땅에 묻지 마시고 제가 태어나 자랐던 사랑하는 이 나라, 내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누이동생이 잠들어있는 이 한국 땅에 묻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셔우드 홀과 메리언 홀 부부는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처럼 조선의 결핵 퇴치에 무게를 두었다, 1928년에 해주 결핵 요양원을 설립하였다.

- 나의 청진기로 조선 사람들의 심장을 진찰할 때면 내 심장도 조선과 함께 뜁니다. (셔우드 홀)

1940년 11월 일제에 의해 강제로 추방을 당하던 날, 부산항에서 셔우드 홀은 조선인 친구에게 선물 받은 태극기를 꺼내어 나뭇가지에 걸었다. 일가족 5명은 태극기를 향해 만세를 외쳤다. (문화공간의 전시실에서) 그들이 있어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셔우드 홀(1893-1991)은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조선에서 보냈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에도 조선을 그리워했다. 가장 가까웠던 한국인 박에스더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조선의 결핵 퇴치를 다짐하였다. 이후 오랜 염원이던 결핵 요양원을 설립하였고, 결핵 관련 자금 확보를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였다. (문화공간의 설명에서)

● 메리 라이언(Mary Lyon)은 미국 마운트 홀요크에 여자신학교(Holyoke Female Seminary)를 세웠다. (문화공간의 설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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