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부산은 자주 오지는 못하였다. 거리도 멀거니와 인연(因緣)이 닿지 않았다. 이제 인연이 닿아 이른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부산역(釜山驛)에 도착하였다. 잘 지어진 부산 역사(驛舍)가 이방인에게 반갑다고 인사하는 듯하다.

부산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초량역(草梁驛)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08년 임시정거장을 마련하면서 부산역으로 역명을 변경하였고, 1910년에 첫 역사를 준공하였다. 당시 역사는 비잔틴풍이 가미된 르네상스 양식의 웅장한 건물로 약한 지반 때문에, 땅속 깊이 말뚝을 박아 세워졌다. 1953년, 대화재로 전소되어 중앙동에 임시 가설 역사를 지어 사용하다가 1969년 초량동에 새 역사를 세웠다. 현재의 역사는 경부고속철도 개통에 맞추어 2003년에 다시 증개축되었다. 그리고, 2019년 부산역 광장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철도의 미래를 상징하는 ‘부산 유라시아 플랫폼’으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역사 안 설명에서)

부산역 광장(廣場)에서 지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부산과 부산역의 역사는 고단하였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밝은 모습으로 이방인을 맞이하고 있다. 역사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모습으로 지나고 있다. 행인들의 대화에는 오히려 외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 듯하다. 부산을 관광하기 위하여 부산 시티투어버스에 올랐다. 부산역 앞의 거리는 많은 차량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 부산은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로 수십만의 피란민을 끌어안으며 그 아픔과 상처까지 품어낸 도시이다. 1953년 발생한 부산 역전 대화재는 부산역사와 역 일대를 태웠고 이재민만 3만 명에 달했다, 부산 중앙동의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는 피란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모여 살던 곳으로 헤어진 가족을 기다리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부산역의 이별과 기다림을 배경으로 태어난 노래가 ‘이별의 부산정거장’이다, 동시에 부산은 뜨거운 열정의 도시이자 시작의 도시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가 열차에 올라 베를린으로 향했던 부산역 유라시아 철도의 출발지인 부산은 철도의 미래와 더불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역사 안 설명에서)
● 화재가 발생한 1953년 11월 27일은 한국전쟁이 휴전됨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가 서울특별시로 돌아간 지 4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부산 일대는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이 점령하지 못했던 지역이었고, 정부가 전쟁을 피해 일찍 내려왔기 때문에 전쟁 피난민이 많았다. 처음으로 화재가 시작된 중구 영주동 일대에는 피난민 판자촌이 밀집해 있어서, 조그마한 불에도 대형 화재가 날 수 있었다. 11월 27일 저녁 무렵에 최초의 화재가 발생하였고, 이후 바람을 타고 불길이 여러 곳으로 퍼졌다. 불길은 이튿날 아침에 잡혔지만, 재산 피해가 어마어마했다. 이 사고로 부산역이 전소되었다. 화재 이후 초량역은 폐역되었고 1966년까지는 가(假)건물 역사를 사용하였다가, 그 해에, 역사를 착공하여 1968년에 현재 위치인 초량동 인근으로 이전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