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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국립중앙박물관


차가운 날씨에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에 왔다. 지하철 이촌역에 내려 걸어가는 길이 차다. 모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다. 박물관은 한국의 고미술, 유물을 중심으로 소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박물관이다.


박물관에서 행사하는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을 관람하고자 오게 되었다. 전시(展示)는 《난중일기》와 《임진장초》 등 이순신이 직접 남긴 기록을 중심으로 전쟁 영웅을 넘어 인간 이순신의 내면(內面)과 감정, 시대가 만들어온 상징으로서의 이순신을 입체적(立體的)으로 조명하였다고 한다. 이순신의 인간적인 슬픔과 아픔, 장수로서의 책임과 부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애국충정으로 일생을 살아온 인간(人間) 이순신을 볼 수 있다. (입구의 설명에서)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의 사람됨은 말과 웃음이 적었으며 용모가 단아하고 선비 같았고, 마음속으로는 담력이 있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으니 곧 평소 수양이 쌓여서 그렇게 된 것이다. (징비록/유성룡)


박물관에서 인간 이순신에 대한 평가를 알게 되었다. 마음을 먼저 읽어내는 통찰력. 적장도 존경한 명장. 완벽함 뒤에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던 인물. 표현에 서투른 아버지. 일에서는 엄격하지만, 백성에게는 따뜻한 인물. 그는 그랬다.

전란이 일어났다.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은 조선과 일본뿐만 아니라, 명나라와 여진족 등 동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쟁의 결과, 조선은 경복궁과 창덕궁 등의 궁궐이 소실되었고, 인구는 최소 100만 명 이상 감소했으며, 경작지의 반 이상이 소멸하였다.
이때 우리에게는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은 1591년(선조 24)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 사천포, 당포, 당항포, 한산도, 안골포, 부산포 등의 해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1593년(선조 26)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그러나, 1597년(선조 30) 조정에서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바다를 건너올 것’이라는 일본이 흘린 거짓 정보에 속아 그에게 가토 기요마사를 생포하라 명하였다. 이순신은 일본의 계략임을 알고 이에 응하지 않았다가 파직되고 투옥되었다. 이후 간신히 목숨을 구한 이순신은 도원수 권율(權慄) 밑에서 백의종군하라는 선조의 명을 받았다. 이순신은 1597년 옥에서 풀려나고, 한양을 떠나 경상남도 합천의 초계 도원수부 초입까지 걸어 내려갔다. 당시 하동을 거쳐 초계로 내려간 일정이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남아있다. 원균(元均)이 일본에 참패하고 전사하자 이순신은 다시 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다.

- 자려 해도 잠들 수 없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난중일기, 1593)

- 이순신은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찢어진 하늘을 꿰메고, 흐린 태양을 목욕시킨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진린-명나라 장수)

- 시련과 좌절의 바다를 넘어 맑았다. 옥문(獄門)을 나왔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이다.

명량해전(鳴梁海戰, 1597)이 일어났다.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이 모함으로 파직되고 원균이 지휘를 맡아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면서 제해권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에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다. 당시 조선 수군은 전선이 12척에 불과했으나, 이순신은 “아직도 전선(典船) 12척이 남아있나이다.”라는 결의로 수군 재건에 힘써서 승리하였다.

-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난중일기, 1597)

이제 마지막, 노량해전이다. 노량해전(露粱海戰, 1598)은 새벽에 시작되어 조선·명 연합함대가 일본 함대를 관음포로 몰아넣는 큰 승리로 전개되었다. 이순신은 이 전투에서 적선을 추격하던 중 유탄을 맞고 전사하였다.

사후 이순신은 정조 시대(1793)에 영의정을 추증받았다. 박물관에서 이충무공이 기개를 알 수 있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올라
큰 칼 만지며 깊이 근심하는 때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 곡조 피리 소리
나의 시름 더하는구나. (이충무공 전서)

지금 바다를 넘어 세계가 기억하는 이순신 장군은 세계 해전사에서 뛰어난 지휘관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당신이 있어 고맙다. 나오는 길에 이순신 장군을 향하는 후대(後代)의 평가가 있어 적어보았다.

고생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장군님께서 계셔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큰절을 올리고 싶습니다.


● 류성룡(柳成龍, 1542- 1607)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 군관인 이순신을 천거하였다. 임진왜란에 4도 도제찰사, 영의정으로 조선 조정을 총지휘하였다. 노량해전과 같은 날에 정인홍, 이이첨 등의 북인의 상소로 인해 영의정에서 삭탈관직 되었다. 안동으로 내려가 선조의 부름에도 올라가지 않고 임진왜란 때 겪은 후회와 교훈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죽을 때까지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던 청백리이면서 명재상(名宰相)이었다. 이순신과는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라 후견인 역할을 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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