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는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중략)(논개/변영로)
충절의 표상, 의암(義庵) 주논개(朱論介, ?~1593) 사당에 왔다. 논개 사당은 논개의 호를 따서 의암사(義庵祠)라 하며,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과 함께 남강에 투신한 주논개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임진왜란 때 끝까지 저항하던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장들은 촉석루(矗石樓)에서 주연을 베풀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논개는 성의 함락과 군관민의 죽음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껴안은 채 남강 아래로 투신하여 순절(殉節)하였다. 그가 뛰어내린 바위를 훗날 의암(義庵)이라 하였다. 지금의 사당을 의암사라 부르는 연유(緣由)다. 장수군에서는 의암 주논개가 태어난 매년 음력 9월 3일을 장수군민의 날로 정하고 논개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추모대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의암사에서 만난 논개의 이야기는 안타깝다. 제 몸을 불살라서 주변을 밝히는 인애(仁愛) 정신, 패권주의에 맞서 끝내 항거한 의용(義勇) 정신, 사대부도 아닌 아녀자의 몸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지아비를 사랑한 충렬(忠烈)정신으로 논개의 기개(氣槪)를 알리고 있다.
길을 걸어 사당을 올랐다. 사당은 언덕에 걸쳐있다. 사당 위에서 장성을 내려보았다. 장성은 조용하게 느껴졌다. 논개를 생각하며 천천히 의암사를 걸어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논개생장향수명비(論介生長鄕竪名碑)가 있어 살펴보았다. 현종 12년(1846), 논개의 출생지(出生地)를 기념하기 위해 장수현에서 세운 비석이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에 파괴될 위기가 있었으나 장수군의 젊은 청년들이 밭에 묻은 후 곡식을 심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였다. 광복 후 비를 파내어 비각을 건립하고 비를 세웠는데, 1974년 의암사 이전 시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비석 앞 설명에서)
다시 걷는 길. 의암사 앞의 의암호가 눈에 들어왔다. 호수는 잔잔하다.

● 변영로(卞榮魯, 1898-1961)는 시인이며, 동아일보 기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 등을 역임한 영문학자이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 ?-1593)는 가토 기요마사의 가신이며 조총병 40명을 이끌고 가토의 부장으로 임진왜란에 종군하였다. 논개와 같이 놀다 물에 빠져 죽었던 그 왜장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